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우리는 지난달 대한민국사상(大韓民國史上) 미증유(未曾有)의 산불로 혼이 난 적이 있다. 많은 문화유산이 소실되었고 무엇보다 고귀한 인명 피해를 크게 겪었다. 각종 동물과 식물, 그 가운데 과수(果樹) 피해는 이루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였다. 정확한 화인(火因)이야 경찰을 비롯한 유관기관(有關機關)에서 밝혀내겠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한 사람의 조그만 실수로 인해 엄청난 비극이 빚어졌다고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 하편(下篇)'에 이런 말이 실려있다. 송나라 신종황제(神宗皇帝)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성지화(一星之火)도 능소만경지신(能燒萬頃之薪)이요 반구비언(半句非言)도 오손평생지덕(誤損平生之德)이라.”라고 적혀 있다. 그것은 ‘몹시 작은 한 점의 불티도 능히 일만 이랑[만경(萬頃)]의 숲을 태울 수 있고, 짧은 반 마디 그릇된 말도 평생의 덕을 그르치고 손상(損傷)시킬 수가 있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조그마한 것은 쉽게 무시하고 주의를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무시했던 조그마한 것이 결국에는 큰 탈로 이어지니 조그마한 것을 결단코 가볍게 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다가는 큰코다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앞으로는 조그마한 것도 주의 깊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유념(留念)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미 발생한 일에서 값진 교훈을 확실하게 얻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냄비근성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는 호들갑을 떨면서 온갖 대책을 마구 다 쏟아내곤 하면서도 정작 일이 진정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태무심(殆無心)하게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비극은 끝나지 않고 무한 반복된다. 이런 비극을 반복하면서 선진국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본들 세상 어느 누가 믿어주겠는가? 선진국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통하여 언제나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되는 행동을 스스로 해내는 나라이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그런 나라는 이미 선진국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선진국의 기준을 경제적인 수준만 가지고 말하는데, 진정한 선진국은 국민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이미 계몽의 수준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나라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해(災害)에 국한하여 보자면 우리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본다. 모두가 재해에 대한 경각심(警覺心)을 가지고 예방하는 조치를 스스로 취할 수 있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자연재해는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것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은 사람들의 부주의에서 재해가 비롯된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재해로는 봄철 산불과 여름철 수해를 들 수 있겠다. 더군다나 인간들의 무절제한 욕망 추구로 빚어진 기후변화는 예상할 수 없는 재해나 재앙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재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각자가 재해를 예방하려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 피해를 줄여나갈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재해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면 객월(客月)에 목도(目睹)한 것과 같은 참혹한 재앙은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미 벌어진 일에서 값진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재앙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우리는 재해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이를 시정(是正)하여 다시는 같은 피해를 당하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고 각자가 반성해야 할 것이고 정부는 더욱더 맹성(猛省)을 해야 할 것이다.
수화(水火)로 일컬어지는 물과 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맹자(孟子)・진심장(盡心章)・상(上)'에서 맹자는 ‘민비수화불생활(民非水火不生活)’이라고 하여 ‘백성들은 물과 불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물과 불은 민생에 있어서 불가결(不可缺)한 요소이다. 그렇지만 이 수화(水火)를 잘만 다루면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을 주지만 이를 잘못 다루게 되면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물과 불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이점(利點)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물과 불을 잘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달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은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건조한 봄 날씨에는 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만 지켰어도 처참한 비극은 미연(未然)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식(曹植)이 지은 「군자행(君子行)」이란 시에 ‘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이라고 노래하였다. ‘군자는 아직 그러하지 않았을 적에 막아서 혐의가 있는 사이에는 처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일이 커지고 나서 수습하기는 매우 어렵고 설령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물적 낭비는 피하기 어렵다.
매사는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는다.’라는 방미두점(防微杜漸)의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나아가 한번 일어난 일에서 큰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거월(去月)의 산불에서 우리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警覺心)을 높이고 예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