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하면 5년전 호주의 산불이 먼저 떠오른다. 먼 나라의 남의 얘기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겠으나 산불은 6개월 동안 지속됐고, 화마가 할키고 간 면적이 자그만치 18만6천㎢나 된다. 이는 통상 얘기하는 축구장 몇 개라는 식의 잣대로 감당이 어려운 규모이다. 호주 산림 면적의 14%에 해당한다. 이런 수치가 별반 실감이 나질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략 남한 전체 면적의 두 배 가량이라면 이해가 될까.
피해액은 90조원(2024년 우리나라 1년 예산이 656조 원이었다.)에 달했다. 40명의 사망자(연기로 인한 질식사 450명은 포함하지 않았다.)가 발생했으며, 건물 5천700여채가 전소되었다. 야생동물 5억 마리도 함께 참변을 당했다. 산불의 연기는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갔다고 하니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외에도 호주 산불의 이산화탄소 발생량(호주 1년 배출량의 3분의2라고 한다)은 지구온난화에도 이바지를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호주 산불의 주된 원인 역시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인도양 쌍극 현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멀리 거슬러 갈 일도 없다. 지난주 의성에서 발화된 산불은 인접한 영양, 영덕, 청송, 안동 경북 북부권 전역으로 확산됐고, 450㎢ 내외(영주시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를 잿더미로 만들고서야 겨우 진화됐다. 이틀간 산불의 연무煙霧가 영주 봉화 예천의 하늘을 뒤덮었다. 주민의 일상에 막대한 불편을 초래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마도 한반도 최악의 산불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호주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자위라도 해야 하나.
이번 산불을 키운 것은 건조한 날씨와 초속 10미터가 넘는 강풍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날씨 탓만을 할 것도 아니다. 산불 진화과정에서 산림청 당국의 진화 관련 허점도 일부 노출됐다.
먼저 국내엔 대형 산불에 필요한 대규모 살수가 가능한 소방항공기가 없다고 한다. 또한 산림청이 보유한 진화 헬기 29대 중 8대가 부속품이 없어 운행을 멈췄다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진화 장비 상당수가 재래식에다가 노후화됐고, 지자체 산불진화대원의 평균 연령도 60살이 넘는다. 한편 산림청과 소방청의 역할 분담이 애매해서 효율성을 크게 낮추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뼈아픈 사실은 이번 산불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산불의 원인 90%가 농사 폐기물과 논밭두렁 소각. 담배꽁초 투기, 성묘객 실화 같은 주민의 과실이나 방심, 부주의에 있다. 즉, 대부분의 산불은 인재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국토의 70%가 산림이며, GDP 세계 12위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산불진화 시스템의 현주소로 보기엔 조금 부끄럽다.
아무튼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농번기가 시작되고, 여행이나 나들이 같은 외부 활동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그만큼 산불 발생의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산불의 예방 수칙이야 사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알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데 있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어느 때 보다 산불 예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