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산림인접 마을에 설치 의무화하라” 촉구
피해 줄이려면 장비 설치·주민 훈련 함께 이뤄져야
지난 3월, 경북 북부지역을 집어삼킨 산불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무참히 앗아갔다. 3천700여 채의 주택이 불에 탔고,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덕 1천356채, 안동 1천230채, 청송 770채, 의성 300채, 영양 110채가 잿더미가 됐다. 그 피해를 두고 “이 정도면 전시 상황과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이번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5년 이후 대형 산불은 되풀이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여전히 사후처리에 머물러 있다. 도시 지역은 건축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건물에는 스프링클러와 소화설비가 의무화돼 있지만, 산림과 맞닿은 마을은 여전히 소방의 사각지대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산림인접 마을에 대한 사전 대응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 같은 대형 피해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산불 대응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강원도는 있었다…마을을 지켜낸 ‘비상소화장치’
강원 영동지역은 반복되는 산불을 겪으며, 산림과 인접한 마을에 산불 비상소화장치를 자체 설치해 왔다. 지난해 기준 고성, 속초, 강릉 등 6개 시군에는 총 1천623기가 설치돼 있다. 이 장비는 옥외소화전과 호스를 연결해 화재 발생 시 마을 진입로와 주택 주변에 빠르게 물을 뿌릴 수 있도록 고안된 일체형 소방 설비다.
녹색연합은 “강원도처럼 마을 단위로 화재를 사전에 진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며 “2022년 울진 산불과 2023년 강릉 산불에서도 이 장비의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혔다.
실제 이 장비의 위력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당시, 고성 토성면 홍와솔 마을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산불 발생 19일 전,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설치한 비상소화장치 덕분이다. 이후 강원 전역으로 장비 설치가 확대됐고, 2021년 강릉 교향리, 2022년 동해 망상동과 양구 청우리, 울진-삼척 월천리 등에서도 주민 주도 초기 진화에 효과를 보였다.
▲ 경북은 없었다…장비 부족한 현실
하지만 최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경북 북부지역에는 이 같은 장비가 사실상 없다.
지난해 기준, 영덕에는 91개가 설치됐지만 안동 2기, 의성 5기, 청송 10기, 영양 1기뿐이다. 우리고장 영주도 고작 10기 뿐이다. 울산 울주는 단 1기도 없다. 좁은 골목길, 외딴 마을 특성상 소방차 진입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주민들의 손에는 아무런 ‘도구’도 쥐어지지 않은 것이다.
녹색연합은 “이 정도면 사실상 마을 전체가 불 앞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기후위기 시대, 산불은 일상화되고 있는데도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사후 복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법제화·훈련 병행 시급
이제는 비상소화장치의 법적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녹색연합은 “산불 대응을 위한 장비 설치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생명권, 거주권의 문제”라며 “소나무림과 가까운 마을을 중심으로 전수조사와 함께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장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주민 교육과 소방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속초 홍와솔 마을은 매년 두 차례 비상소화장치 사용법 교육과 소방훈련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훈련 경험이 있던 주민들은 산불이 번지자 두려움보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소방당국과 협력해 마을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정부도 이제는 본질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대형 산불 뒤 복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마다 재난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사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길은 ‘불길 앞에서 쓸 수 있는 장비’와 ‘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는 ‘다시 일어난 참사’라는 보도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재난 앞에 준비된 사회로 가야 한다”며 “이번 경북 산불을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는 예방 중심의 정책으로 과감히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