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완연한 봄이다. 천변에 즐비한 나무마다 봄맞이가 한창이다. 가지 끝에, 강물 위에, 옷깃 속에, 시민들의 걸음걸음에, 봄은 포도송이마냥 알알이 희망을 달고 있다.

이제 봄꽃을 시작으로 계절은 분주한 순환을 이어갈 터, 그런 봄을 만날 때마다 새로움을 찾고, 시작을 결심할 수 있어 도전의 의지가 생기곤 한다. 봄은 단지 자연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을 열어주기에 언제나 가슴 뛰는 설렘을 안긴다.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좋은 일이 다가올 것 같은 기대감, 그 설렘 때문에 우리는 매년 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 설레는 이 봄이 누군가에겐 벗어날 수 없는 한파의 연속이기도 하다. 조금만 걸음을 옮겨도 마주하게 되는 지역 상가의 공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늦춰지는 발걸음, 비단 필자만의 힘든 걸음은 아닐 테다. 문 닫힌 가게 안은 시간이 멈춘 듯 먼지만 소복이 쌓여 있다. 봄은 왔건만 굳게 잠긴 문만큼 닿을 수 없는 봄과의 거리다. 빈 점포를 바라볼 때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과 마주한 느낌이다. 희망찬 봄날에 그 봄을 만끽할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영주에서 가장 붐비던 문화의 거리는 언제부턴가 한산한 풍경으로 바뀌어버렸다. 임대료의 파격적인 변화에도 세입자를 구할 수 없다는 점주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024년 4분기 영주 도심 상가 공실률이 33.5%라는 통계가 모든 걸 말해주는 듯하다. 인구가 줄어들고 그에 따른 지역 상권도 침체하는 현실에서 빈 점포가 생기는 걸 어찌할 수는 없다. 안타까운 건 상가의 공실이 단지 비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텅 빈 가게가 눈에 띌 때마다 도미노처럼 다른 가게로 번질까 봐 염려도 따른다. 공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장의 변화와 지역 생활권의 이동이 한몫한 것만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유동인구가 줄면서 체감 경기는 더 나빠지고 있다. 앞으로 빈 점포를 채우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닐 터, 채움과 동시에 지속적 유지가 더 중요하리라 본다. 지역의 특색을 잘 살려 그것을 모티브로 도심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껏 지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영주를 지켜온 상점들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었다. 영주의 상점은 지역민의 희로애락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수식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깃든 곳이었다. 지역의 상권이 회복된다는 건 공실이 메워지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이다. 그곳은 지역민의 정서를 나누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영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자원, 문화자원, 산업 자원을 보유한 고장이다. 많은 산과 강이 있으며 유불 문화를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영주가 전통적인 종교와 문화, 지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만큼 도심 안에 공감과 감동을 깃들게 해야 한다. 지역민의 정서를 사고파는 상권의 부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 본다. 서사가 담긴 상점, 그 안에는 가장 인간다움의 가치가 담겨 있기에 사람을 불러모을 수 있다. 어제와 오늘, 내일로 이어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도심 안으로 불어넣어야 하는 이유다.

간혹 새롭게 문 연 작은 가게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다시 꿈을 꾸는 청년들이다. 바로 그곳이 봄이다. 그들의 호흡에서 미래를 보고 희망을 읽는다. 우리가 지금껏 봄을 통해 희망을 품으며 씨앗을 심을 수 있었던 건 내일이라는 무한의 꿈을 설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창업이 물밀듯 밀려오면 좋으련만 희망대로 되지 않음을 탄식만 하지 말고, 주어진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지역 주민의 협력과 공동체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지속적인 공동체의 노력과 협력만이 침체한 상권을 살릴 수 있기에 구체적 실천 방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리라 본다. 지역 상권의 침체는 청년 창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인구 소멸로 인한 공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지역 주민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한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찾아들기 마련이다. 지금 동시다발 최악의 산불로 나라 전체가 초비상 상태다. 그곳에도 봄을 기대했건만, 화마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봄,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그 봄이 아픔은 보듬고, 꿈과 희망을 부르는 손짓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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