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기가 싫어서인지 육화(六花)를 마구 흩뿌려 많은 창염수(蒼髥叟)가 습설(濕雪)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제 팔이 무참하게 꺾이는 기현상을 연출하였다. 그렇지만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섭리(攝理)는 어길 수 없는 법, 청매(靑梅)는 이미 불쑥이 꽃망울을 배태(胚胎)하고 하시(何時)라도 탄로(綻露)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새봄의 대향연(大饗宴)을 묵묵히 매서운 추위의 겨우내 동안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도모(叨冒)와 몰염치(沒廉恥), 단시(短視)와 관견(管見)이 충돌하고 난무(亂舞)하는 등 시절이 너무도 어수선하여 많은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모두가 일종의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쭉 갈 수는 없고 또 그렇게 가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하면 마냥 바람에 나뒹구는 다북쑥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닐 수는 없다. 이런 때일수록 각자가 마음을 다잡아 중심을 세워서 꿋꿋하게 우뚝 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에게 삶의 지혜와 나아갈 방향을 자문(諮問)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명철(明哲)한 사회의 어른을 너무도 쉽게 무시하고 또 그런 존재의 필요성을 몰각(沒覺)하고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이런 위기를 당면하게 되자 그제야 지남(指南)을 해줄 사람을 찾는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의 그런 잘잘못을 따질 만큼 한가하거나 여유롭지 않고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므로 이제라도 현철(賢哲)한 분을 찾아 사회의 어른으로 세우고 그에게 지혜와 방향성을 구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재와 같은 사회 풍토 속에서는 그 어느 어른도 선뜻 사회의 어른으로 나서지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그간 어른을 우습게 알고 그 권위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나 강고(强固)하게 자리 잡아 온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토대와 분위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억지로라도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 그 바탕 위에서 사회의 어른을 모셔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위기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그 위기를 잘 극복하려고 중지(衆智)를 모아 나갈 때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위기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기회로 둔갑(遁甲)하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피나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한편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사회의 어른을 모시기가 어렵다면 하나의 대안(代案)으로 경전(經典)과 고전(古典)에서 길을 찾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 경전과 고전에는 인류의 스승인 성현들의 탁월한 지혜와 무가(無價)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이를 본받아 삶의 지남(指南)으로 삼는다면 현재와 같은 혼동과 혼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만난(萬難)을 딛고 새롭게 출발할 때 모름지기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의 하나로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혈구(絜矩)’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혈구란 사전에 ‘곱자를 가지고 잰다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앎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대학에서 설명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는 다음과 같다.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뒷사람에게 가(加)하지 말며,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왼쪽에게 사귀지 말며,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오른쪽에게 사귀지 말 것이니, 이것을 일러 혈구의 도라고 하는 것이다.
(소오어상所惡於上으로 무이사하毋以使下하며 소오어하所惡於下로 무이사상毋以事上하며 소오어전所惡於前으로 무이선후毋以先後하며 소오어후所惡於後로 무이종전毋以從前하며 소오어우所惡於右로 무이교어좌毋以交於左하며 소오어좌所惡於左로 무이교어우毋以交於右가 차지위혈구지도此之謂絜矩之道니라.)’
이 말은 내가 만약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無禮)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감히 이 무례함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이 나에게 불충(不忠)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이 불충함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 전후(前後)와 좌우(左右)에 이르러서도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으면 몸이 처한 바의 상하(上下)와 사방(四方)에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이 피차(彼此)가 똑같아서 방정(方正)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기 쉬워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용이(容易)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상태가 고착(固着)된다면 앞에서 말한 혼동과 혼란의 상황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혼동과 혼란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혈구지도(絜矩之道)’를 상정할 수 있겠다.
각 개인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십분(十分) 이해하고 배려할 때 작금의 혼동과 혼란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이다. 바로 고전에서 지혜를 구하고 길을 찾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 모두 혈구지도의 의미를 진정으로 체득(體得)하여 새롭게 출발해 보자. 그래서 우리 사회를 살맛 나는 사회로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선비의 고장인 영주에서부터 이러한 출발을 마련하여야 진정한 선비의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