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인생, 앞으론 재능을 나누기 위해 달립니다”
탁구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서 1인자 등극
경북탁구협회에서 대한탁구협회까지 섭렵
국제심판 자격 취득한지 25년째 유지 중
언제 어디서든 탁구를 위한 봉사 ‘오케이’
“원래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집 앞에 탁구장이 생기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작했다”는 이대우(64) 탁구 국제심판은 지난 2003년 2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생활체육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지역 체육인으로서 위상을 한층 더 높인 이대우 심판은 ‘탁구 코트와 함께한 삶’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룬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영주인이기에 소개하려 한다.
현재 경북탁구협회와 대한탁구협회 심판위원회에서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대우 심판은 풍기 출신으로, 풍기초·중학교를 졸업하고 영주고등학교를 거쳐 경북전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가업을 운영하던 중, 1986년 “못다 이룬 꿈”을 아이들(안동대학교 탁구 선수)을 통해 이루고 싶어 시합이 있을 때마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1년에 6번 정도” 대회에 참가해 하루 전날부터 선수들을 위해 봉사하며 일주일을 보내는 등, 가업을 제쳐둘 정도로 탁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2017년 동양대학교 생활체육과를 졸업한 이 위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축구를 하다가 탁구로 전향한 후, 불과 6개월 만에 큰 대회에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도민체전에 출전해 단체전 3위를 기록하는 등 탁구에 몰두하며 성과를 거뒀다. 이후 현실적인 이유로 운동을 중단했지만,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후 “유명한 선수를 만나려면 국제심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2000년 국제탁구연맹(ITTF)이 인정하는 화이트배지(White Badge: WB)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 “탁구 심판 자격을 취득한지 25년째입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블루배지(Blue Badge: BB) 과정을 50세에 통과하며, 2011년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렸다. 독학으로 시험을 준비한 그는 60문항 중 영어 문항이 기본 15문항 포함된 필기시험에서 45문항 이상을 맞춰야 했으며, 이와 함께 4번의 실기평가와 인터뷰 시험까지 통과했다.
특히 WB 심판에서 BB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외국 시합에 2회 이상 참가한 경험이 있어야 했으며, 그는 이를 충족해 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남자 심판으로는 1호, 여자 두 명에 이어 세 번째로 BB 심판 자격을 취득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210개 이상의 대회에서 심판으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 경북탁구협회에서 이사직을 맡았던 그는 이후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1년 뒤에는 경북생활탁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같은 해 한국실업탁구연맹에서는 심판이사로 활동하며 2004년까지 직책을 수행했다. 블루배지를 취득한 2011년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탁구협회에서 심판장려상 및 심판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3년부터 대한탁구협회 심판차장을 맡았고, 한국실업연맹(2015) 심판이사, 한국프로탁구리그(2022) 심판, 대한탁구협회(2023) 심판위원, 한국실업탁구연맹(2024) 심판차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경북탁구협회 심판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임기는 올해까지다. 또한, 지난 2월 14일부터 대한탁구협회 심판위원회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끊임없는 탁구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는 이 위원장은 2013년 처음 시작된 클린심판아카데미 1기를 수료할 정도로 항상 앞서가는 인물이었다. 정도(正道)를 지키는 그는 시합이 없을 때면 영주에서 시간을 보내며 후배, 친구, 지인들에게 탁구와 관련된 조언을 아낌없이 전하는 인정 많은 사람이다.
이 위원장은 2003년 일본 고베에서 처음으로 국제 탁구 심판을 맡았던 순간을 회상하며, 국내에서는 2000년대부터 꾸준히 심판을 봐왔다고 말했다. 특히 2001년 첫 전국탁구대회에서의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외국 선수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탁구로 다져진 뚝심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자연스럽게 발휘됐다고 전했다.
국제심판으로서의 위엄과 무게감은 대회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얼마 전 3급·2급 심판교육을 진행했다는 이 위원장은 “78명 중 14명이 영주 사람이었다. 교직자 출신을 비롯해 교감, 교장 등 심판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았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 “영주탁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
경북탁구협회와 대한탁구협회에서 1급으로 소속돼야 지원할 수 있는 국제심판은 현재 WB(화이트배지) 심판이 300명, BB(블루배지) 심판이 20명이 등록돼 활동하고 있다. 국제 시합에서는 심판을 신중히 선발하는데, 경기 중 실수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심판을 우선적으로 채택한다.
이 위원장은 “처음 심판을 맡게 되면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라며, 2001년 익산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유승민과 김택수 선수의 결승전을 직관했을 당시 얼마나 떨렸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경기에서는 심판도 떤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남자 단식 결승전의 주심을 맡았던 경험이라고 밝혔다. 무슨 경기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랠리가 이어질 때, 심판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선수들 간 심리전이 더욱 치열해진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는 심판의 공정성을 높이고, 자질 및 역량 강화를 위해 ‘클린심판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 태권도 경기에서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진 이후,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주요 대회에서 추천받아 등록된 심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심판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매년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시대별로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국제·국내 경기 규정에 따라 교육 과정도 다르게 운영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블루배지 자격증 소지자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BB 자격증을 유지하려면 3년 동안 3번의 심판 활동을 해야 하며, 매년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는 “그만큼 지속적인 학습과 연마가 필요한 스포츠가 바로 탁구”라며, 현재 인도는 12명, 중국은 13명, 일본은 8명의 BB 심판을 보유하고 있다며, BB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했다.
2028년 LA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지방에는 여자 엘리트 심판이 많다. 선수 출신 남성들은 주로 감독으로 진로를 정하는 반면, 여성 선수 출신들은 심판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선수 출신들은 경기 규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심판위원장 자리에 많이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활체육 출신인 이 위원장이 채용되면서 이례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가 걸어온 길에서 처음 맡은 자리이며, 이를 계기로 인맥을 넓히고 자랑스러운 영주인으로서 발판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 탁구는 내 인생, 평생을 함께 해와
오는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국제대회 규모로 강릉에서 WTT(World Table Tennis)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는 국제심판들이 참여하며, 기존의 코리아오픈, 재팬오픈, 차이나오픈을 통합한 새로운 대회다.
현재 국내 탁구대회는 여전히 수동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국제대회에서는 전자기기를 도입해 경기를 진행하며, 터치패드 사용이 기본이다. 심판은 전반적인 운영 체계를 이해하고 터치패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타임 및 옐로카드 판정을 터치패드를 통해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 주심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또한, 서브를 늦기 전에 가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심판의 집중력이 더욱 요구된다. 국제심판들도 점점 젊어지는 추세다.
이 위원장은 “탁구는 보통 4~5살에 시작하면 선수가 될 수 있다. 유명 선수들의 자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탁구는 좁은 공간에서도 두 사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며 “영주에도 이미 탁구 매니아층이 많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과 후 수업이나 늘봄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 달에 두세 번씩 강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하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탁구에 대해 질문해 달라. 답을 남겨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부분을 국제심판을 통해 자연스럽게 채우면서 꿈을 이뤘다”며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 나아갔고, 폭넓게 사고하면서 내 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현재 위원장의 역할은 직접 심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기 진행 데스크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탁구는 내 인생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나와 함께해온 스포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매일 5km를 걷고 5km를 뛰며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그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고자 발로 뛰며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