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삼봉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성은 비록 약하지만 힘으로 억누를 수 없고, 때때로 어리석더라도 잔꾀로 속일 수는 없다.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이들이 따른다’
우리 고장의 사표師表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 기념사업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최종 확정됐다. 정도전의 학문과 사상을 선양하고 선비도시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삼봉 기념사업 용역’을 영주시가 발주했고, 동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23년 가을부터 1년 2개월간 연구용역을 수행한 바 있다.
삼봉연구원이 공개한 삼봉 기념사업의 용역보고서를 개괄해 보면, 구 삼판서 고택과 현 삼판서 고택, 그리고 구학공원을 재정비하고, 시묘지에는 삼봉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된다. 또한 삼봉학 연구총서 발간을 위시로 문화 예술 관광 사업들의 목록이 빼곡하다.
선비의 고장에서 정도전 같은 걸출한 선비를 기리는 사업은 그의 후예로서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역사적 자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저간의 삼봉은 그의 치적(민본주의를 기반으로 조선을 설계했다)에 비추어 저평가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삼봉에 대한 재조명이나 업데이트 문제는 심심치 않게 식자층에서 논의됐고 그 당위성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금번 마스터플랜은 삼봉 사업의 첫번째 단추이고, 향후 사업 시행시 가이드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기대와는 달리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 사업의 전반적인 행태가 하드웨어 일색이다. 무엇보다 삼봉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는 그의 자취나 흔적의 물신화에 매몰된 것 같다. 일종의 정도전을 테마로 한 관광지 개발사업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둘째 주요 사업들의 면면이 대체로 뻔하다. 어디서 봤거나 들어 봄직한 사업들이다. 길거리 축제가 그렇고 유적지의 스토리텔링이 그렇다. 삼봉 뮤지컬 제작이나 기념관과 교육관, 좌상의 건립, 역사문화공원, 삼봉 민본대상, 학술대회 등 어느 하나 새롭다할 만한 것을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일부 사업은 현재 영주시가 이미 시행 중인 선비 관련 사업과 성격상 중복돼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광장 조성, 산책로 개설, 주차장 설치, 각종 안내판 정비 등 추가적인 인프라 사업들이 포함돼 있어 예산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다만, 삼봉학 연구총서를 발간해 대학 교재로 활용하는 방안은 교육적 가치를 고려할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도전 기념사업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를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마스터플랜이 단순한 공간 조성이나 관광지 개발을 넘어, 삼봉의 정신을 보다 깊이 있게 알릴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것은 역시 물질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이상과 비전에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정도전 기념사업 역시 단순한 시설 정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연구·문화 사업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정도전을 기념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단순한 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삼봉 정신이 시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