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사람이 언제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적어도 문자를 사용한 사실보다는 말을 먼저 했다는 것은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바이다. 이처럼 개개인의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인 말은 그 사용에 있어서 다른 어떤 소통 수단보다 편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편리한 의사소통 수단인 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하게 사용하는 말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즉 문자로 표현된 결과물은 얼마든지 그것을 지우거나 태우면 흔적을 없앨 수가 있다. 하지만 말은 입에서 발화(發話)되는 순간 말소리는 사라지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이 가지는 묘한 특장(特長)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바로 ‘칼에 베인 상처는 쉽게 나으나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간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그것이다. 이 속담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언어(言語)」편에 보면 유회(劉會)라는 사람이 한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말이 이치에 맞지 아니하면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言不中理.不如不言)’이다. 말은 이치에 맞게 말해야지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말이 넘쳐난다. 그야말로 말의 성찬(盛饌)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이치에 맞는 말, 즉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말은 진실을 말할 때 빛이 나는 법이고 모두가 그 말에 수긍(首肯)하게 된다.

또 말은 언제 해야 가장 효율적일까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역시 ⌈논어(論語)⌋의 「계씨(季氏)」편 6장에 이런 말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를 모심에 세 가지 잘못이 있으니, 말씀이 미치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躁조] 이르고, 말씀이 미쳤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숨김[隱은]이라 이르고, 안색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을 장님[瞽고]이라고 이른다.(孔子曰侍於君子.有三愆.言未及之而言.謂之躁.言及之而不言.謂之隱.未見顔色而言.謂之瞽.)’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송나라 학자인 화정선생(和靖先生) 윤돈(尹焞)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세 가지 잘못이 없을 것이다.(時然後言.則無三者之過矣)’라고 공자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말은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최적의 시기에 맞춰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말해야 할 최적의 시기를 알지 못하고 미리 말하거나 뒤늦게 말하거나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적의 시기에 말해야 이런 세 가지 허물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언(發言)할 적에 있어서 시기와 이치에 맞음의 여부(與否)가 최대의 관건(關鍵)이란 것이다. 그래서 ⌈주역(周易)⌋의 ‘곤괘(坤卦) 육사(六四)’에 ‘주머니 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으며 칭찬도 없으리라.(六四.括囊.無咎.無譽)’라고 하고 상전(象傳)에서 ‘주머니 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括囊無咎.愼不害也)’라고 하였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주머니를 입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입을 주머니 주둥이를 묶듯이 닫아두면 탓할 수도 없지만 칭찬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한마디라도 말을 해야만 그것을 가지고 칭찬하든지 탓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으면 절대로 무엇이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현대에는 너무나 쉽게 주머니 주둥이를 풀어놓듯이 말을 마구 쏟아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이치에 맞는 말은 거의 들을 수가 없다. 그러니 말의 성찬은 보게 되지만 진실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차분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정말로 말해야 할 최적의 시기에,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구 쏟아내는 말은 사회의 공해(公害)를 일으킬 뿐이요 다른 사람들을 짜증이 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속담(俗談) 한 마디를 소개하면서 편리한 소통 수단인 말의 효용성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말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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