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 지나다 보면 지자체 경계마다 고장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문구를 보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 시의 경우 ‘선비의 고장 영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표기돼 있다. 영주의 선비는 그저 구호가 아니다. 실제로 시는 해마다 선비문화축제를 열고 영주를 알리고 있고, 선비 관련 상표권도 등록했다. 근래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비정신의 체험 공간인 테마파크 선비세상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를 전국적으로 전파 중에 있다.

선비의 가치는 선비라는 정체성을 두고 이웃 고을 안동과 실랑이(정확히는 신경전이었을 것이다)를 벌인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민선 출범 이후 우리 고장은 민선 시장의 노선에 따라서는 ‘살기 좋은 영주’, ‘스포츠 시티’, ‘고품격 도시’, ‘힐링중심 행복 영주’ 등 여러 형태의 플랜과 모토의 색깔을 바꾸어 왔다. 그러나 선비 만큼은 제자리를 지키며 늘 시민과 함께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선비의 고장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일이 있었다. 국민권익위에서 전국 공공기관에 대한 2024년 청렴도 평가 발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청렴도는 모든 공적 행위의 바로미터가 되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청렴도는 행정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엔 지자체는 물론 243개 지방의회도 포함돼 있다. 평가는 크게 청렴 체감도, 청렴 노력도, 부패 사건 발생 실태의 세 영역으로 나눠 이뤄졌다. 평가 결과 전년도 대비 137개 기관의 등급이 상승, 133개 기관이 하락했다. 유감스럽게도 영주시는 후자 쪽이다. 2023년 4등급에서 다시 한 등급 하락한 5등급을 받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하면 5등급이란 이젠 내려가려 해도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만일 당신이 선비였다면 얼굴을 들기 민망한 성적이다. 그러면 시민의 대변기관인 시의회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는가? 4등급을 받았다. 시보다야 양호하지만 참 잘했어요라는 고무도장을 받을 수 있는 등급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와 사이좋게 5등급은 받지 않아 ‘초록은 동색’이라는 빈정거림을 겨우 면했을 따름이다.

이번 평가 내용을 세부적으로 좀 더 살펴보자. 시민이나 공직자 모두에게 업무 과정에서의 부패 인식과 부패 경험 및 관행은 여전하다. 의회의 경우 의정활동 중 시에 대한 시의원의 권한을 넘어선 과도한 업무처리 요구 같은 행태도 눈에 띈다. 특히 의회의 이해 충돌 방지 지표 역시 낙제점 수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낮은 청렴도는 시민들로부터 늘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개선의 노력이나 징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개혁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부패 방지 교육이나 전문기관의 컨설팅 같은 기존의 교과서적인 수법으로는 말이다.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또한 해법 자체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설령 그 방법이 환부를 도려내는 큰 수술이 될지라도 말이다. 결국은 사람의 일 아닌가. 그러기에 시민 아니, 영주의 선비들은 시의 대책을 묻고 있다. 시의회 차원의 특별한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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