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크리스마스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우울했다. 음원 저작권 문제와 정부의 에너지 절약 시책 및 소음규제로 인하여 거리에 캐럴이 사라진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요즘 시국이 성탄절 기분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탄핵정국으로 말미암아 자영업자들의 사업장은 물론 서민들의 마음이 단단하게 얼어붙어서 영주 시내 전체가 을씨년스러워진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자면 그 지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올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보니 나라의 경제 상황이 정말 최악이기에 또한 우울하다.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가 궁금하다면 크리스마스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성탄목)를 보면 된다. 성탄목의 역사는 대체로 16세기 초 프랑스 동부지역의 알자스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탄목은 원래 에덴동산에 세워진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전나무’에다가 인간의 죄악을 상징하는 ‘사과’,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죽음과 절망을 뚫고 생명을 피워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종이 장미’, 그리고 새 생명의 근원이요 양식을 상징하는 과자 모양의 ‘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가리키는 ‘촛불’을 장식하는 것이 정석이다.
전나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4가지 장식물 중 하나가 없거나 아니면 이상한 다른 장식물이 걸려있다면 크리스마스의 본래 정신이 퇴색되었거나 상품화로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영주 시내에는 남부 교차로와 분수대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는데, 크리스마스의 정신과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의 없이 세워서 심히 부끄럽다. 더 황당한 것은 분수대 크리스마스트리인데 이것은 우스꽝스럽게도 부석사 석등을 모방한 자그마하고 보잘것없는 석등 위에 반짝이 전깃불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영주 시내 교회에도 제대로 된 성탄목을 찾아볼 수 없으니, 성탄절은 모든 시민이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 쉬는 정도의 날에 불과한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의 소유가 아니다.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나라들과 종교의 자유가 없는 몇 개의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 200여 국가 중 75%에 이르는 나라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고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정신은 국가와 종교를 넘어서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인류에게 가치가 있다.
예수가 태어난 시대적 상황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정치적 압제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대왕의 권력과 불의에 의해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때였고, 종교적 자유가 억압받고 도덕의 기틀이 허물어진 무질서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하여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권력자 헤롯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부터 그 아래의 모든 아이들을 다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위기 상황과 ‘영아살해사건’의 위험 속에서 예수는 그야말로 권력 없는 자, 소외당한 자, 가난한 자,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소죽통에서 태어난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부와 쾌락을 향유하며,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고, 고난받는 자들을 외면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말 그대로(구원자, 메시아를 뜻하는 ‘Christ’와 미사 또는 예배를 뜻하는 ‘Mass’가 합친 말) 헐벗고 고난 당한 자들에게 진정한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예배하는 날이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에 포로된 자들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움질하는 정치판과 이기적 탐욕에 빠져 있는 무질서한 사회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을 기념하는 날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들을 우울하게 한다. 또한 이토록 타락한 사회 속에서 크리스마스의 본래 정신이 세속화와 상업화에 매몰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