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고향 사람이 돌아가셔 문상 갔다가 그와 마주쳤다. 어깨는 처지고 나이보다 허리가 굽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그가 나를 아는 체하는데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의 앞에서 주눅 들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색하게 외면하고 지나치는데 가슴이 울렁거리며 옛일이 떠올랐다. 그는 오래전에 한동네 살았었다. 동네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이유 없이 돈을 빼앗고, 폭행을 일삼았다. 사건이 커져 경찰서에 몇 번이나 잡혀갔지만, 그때마다 다음 날 풀려나 사람들을 째려보고 다녔다.

그는 군 공화당 청년위원회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어서 번번이 풀려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풀려나오면 며칠은 조용히 지냈으나 패악질을 끊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같이, 그가 사라졌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들어서 깡패들을 모조리 잡아다 삼청교육대에 처넣었다고 했다. 그도 삼청교육대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자 그의 식솔들은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한참 후에 반병신이 된 그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형편없이 망가지고 늙은 그 앞에서 나는 오금이 저렸다.

오래전에 술자리에서 들었던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1970년대 말, 박정희가 쿠데타로 종신집권 체제를 만들었던 시절에 행패 부리던 사람이 전두환 쿠데타 직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나서 동네가 조용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 깡패 같은 놈이 행패를 부릴 때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이웃들이 지게 작대기를 들고 모여들었어도 그자가 그런 못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풀이 죽고 말았다. 극악으로 치닫던 박정희 독재정권 말기에 경찰도 손 못 대는 놈 앞에 나서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은 문 닫고 숨죽이며 귀를 막았을 것이다. 나라고 달랐을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공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폭력으로 해체하고 부정선거로 종신집권을 꿰하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도망치고, 겨우 회복되어가던 나라를 해병대를 앞세운 박정희 “다까끼 마사오”가 쿠데타로 찬탈해갔던 권력을 차지하려고 전두환의 무리가 광주를 짓밟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987년을 지나 자유로운 나라가 되고 선진국이 되었어도 나는 숨죽이고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숨죽이고 있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이렇게나 좋아졌을까?

2024년 12월 3일 밤에 한 미치광이 검사 출신 대통령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흉내 내 쿠데타를 일으켰다. 내가 밤새 유튜브를 보며 초조해하고만 있을 때,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 계엄군의 총구로부터 나라를 구해냈다. 사람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모여서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마침내 국회가 내란수괴 윤석열을 탄핵하고 그의 대통령 권한을 정지하였다. 그런데도 108석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정당은 당론으로 탄핵을 반대했다. 그나마 12명의 ‘배신자’가 있어 어렵게 탄핵할 수 있었지만, 내란 수괴를 옹호하는 위헌정당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겼다. 그리하여 내란수괴가 “우리 당”이라 부른 정당이 위헌심판으로 척결되려는 동안에도 ‘주먹감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다.

예수께서 말하길 “누구든지 너의 옷을 뺏으려 하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하셨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 가난한 자에게 겉옷은 전 재산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지중해 세계에서는 왼손을 쓰는 일은 무도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수께서는 억압하는 자에게 순순히 당하고 있지 말고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마저 내던지고,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대 ‘네가 이렇게도 무도한 자이더냐’고 대항하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나는 숨죽이고 귀를 막고 지냈다.

우금치에서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쓰러져간 동학 농민군들, 식민지 조국을 되찾겠다고 만주로 상해로 떠났던 선각자들, 독립만세를 부르다 스러져간 나어린 선조들이, 빨갱이 몰이에 희생된 4.3 제주의 동포들이, 그 동족을 향해 총을 쏠 수 없다며 항명했던 여순항쟁의 군인들이, 동족이 서로 싸운 전쟁터에서 쓰러진 전사들이, 4.19혁명에 바쳐진 어린 선배들이, 박정희의 총검에 고문당하고 숨져간 지사들이, 전태일이, 광주에서 희생된 영령들이, 박종철이, 이한열이, 세월호와 이태원의 원혼들이 모두 살아나 우리를 붙들고 있었다.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아! 신은 용서해 주실까.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 항거하라 하셨는데, 나는 문 닫고 숨죽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용서해 주실까. 잎 떨어진 낙엽송 꼭대기에 말벌집이 흔들린다. 바람에 집은 부서지고 말벌들은 흩어졌다. 이제 무서워할 아무것도 없다. 다만, 문 닫고 침묵하며 지낸 욕된 날들이 부끄러울 뿐. 신이여! 침묵한 나를 용서하지 마소서! 당신께서 지으신 바대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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