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6시간 만의 계엄 해제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나라 안팎으로 회오리치는 폭풍의 바다 한 가운데 놓여 있다. 비상계엄 선포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더라도, 어쩌자고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비상계엄이 필요한 사태도 아니고 또 국회의 절대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계엄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무지막지하게 일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부분 국민은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계엄 선포를 연습 삼아 한 것인지, 이성을 잃고 홧김에 냅다 저지른 것인지, 자신에게로 밀어닥치는 위기감에 이판사판 달려든 것인지, 아무튼 대통령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대통령에게 형법상 내란죄를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수사한다고 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지금 여론은 진보·보수 언론 할 것 없이 모든 언론매체는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를 범한 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명색이 대통령인데 국민에게서 내란죄의 수괴라는 소리를 듣고, 탄핵도 모자라 급기야 처단의 대상이 되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으니, 국민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국내적으로 또 국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당의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에 힘입어 1차 탄핵을 면했지만,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논의가 오히려 국민의 분노에 불을 붙인 격이 되고 말았지 않는가. 이제 남은 것은 시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수순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말미암아 여당은 지리멸렬하게 힘을 잃고 오히려 분열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하게 된 주된 이유로 내세운 입법부 독재 명분은 오히려 야권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야권이 여권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을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한 셈이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고 힘들게 권력을 잡은 보수 세력들이 싸움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아예 정권을 진보 세력들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영주지역 시민들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윤석열 후보에게 71.5%의 표를 몰아주지 않았는가. 지난 12월 6일 영주역 광장에서는 지역의 18개 단체가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민주주의를 짓밟은 처사이고 내란 주모자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워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비상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영주시내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보수정서가 강한 지역인 만큼 아마도 많은 시민은 자신이 뽑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내심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또 속된 말로 누구 좋으라고 이런 일을 벌였는가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과 같은 참여민주주의 시대에서 바람직한 정치가 이뤄지려면 하버마스(J. Habermas)의 말처럼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 의사소통이 이뤄질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 주체와 주체가 상호주관성 아래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합의할 것은 합의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정치에 있어서의 합리적 이성이 작동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모든 정치 세력이 오직 권력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야권은 하루속히 대통령을 끌어내려 조기에 정권을 잡으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을 터이고, 정부·여당은 어떡하든지 대통령의 퇴진을 미뤄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살려서 꺼져가는 보수 세력들을 결집하고자 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시민들의 비상계엄에 대한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고, 대통령의 탄핵대열에 동참하지 않는 시민들을 향해서 내란을 동조하는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이번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당사자인 대통령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