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나는 산속에 산다. 마을 뒷산에 집을 짓고 산 지 15년이 되었다. 그 사이 마당 가에 심은 소나무들이 자라 그늘 밭도 생겼다. 봄이면 소나무 그늘 밭에서 자란 곤달비도 향기로운데, 문득 돌아보니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집터 양쪽 산이 낙엽송 조림지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여 자라니 집에 울타리 나무를 심을 일이 없다 여겼었다. 가끔 마을 분들이 운동 삼아 지나거나 들르는 일에는 신경 쓸 것이 없다 여기고 있었는데 문득, 살림살이를 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옆을 지나는 산책길에 울타리를 만들 나무를 고르려니 걸리는 것이 여러 가지다. 볕이 6시간 미만인 음지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여야 하고,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여야 하고, 키도 적당해야 하고 가지치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수형이 좋아야 한다. 거기다 겨울을 나고도 얼어 죽지 않을 만큼 내한성도 필수다. 큰돈 들일 수 없으니 묘목을 심어도 얼른 자라서 가릴 만큼 빨리 크는 수종이라야 하니 어지간한 것들은 탈락이다.

사철나무는 상록이고 영주에서는 월동도 무난하고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꽂으면 다 사니 값도 싸다. 다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야를 가려줄 것이다. 그 앞에 서양측백 중에서 빨리 자라는 것을 심으면 5년이면 3m는 클 것이다. 줄지어 늘어선 사철나무 앞쪽으로 군데군데 키 큰 향나무를 심으면 녹색 배경이 되어 무슨 꽃을 심어도 색색이 꽃 빛을 드러내 줄 것이다.

작년엔가 소연가에 나오는 석남(石楠)에 대해 다른 적 있다. 석남은 중국 남부와 일본에 자생하는 상록수다. 장미과에 속하고 새 가지가 돋을 때는 붉다가 자라면서 녹색이 된다. 붉은 잎의 생김새가 상록 참나무인 가시나무류의 잎처럼 생겼다고 홍가시나무라 부른다. 홍가시나무는 난대수종으로 추위에 약하다. 제주와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용이나 울타리 소재로 많이 쓰이지만, 중부지방에서는 월동이 어려워 많이 심지 못했다.

그런데 “레드로빈”이라는 교배종 홍가시나무가 영하 20도까지 견딘다고 한다. 강원도나 경기도에서도 월동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묘목을 사다 밭에 심어두었다. 사철나무 울타리 안쪽에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심고 붉은 홍가시나무를 군데군데 심으면 안팎에서 보기 좋을 것이다.

홍가시나무를 심어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석남(石楠홍가시나무, 약재)은 따뜻한 난대지방에서나 자라는 것인데 신라사람 최항이 머리에 꽂고 놀았다’는 설화가 떠올라 나무 생김새가 물음표“?”모양이 될 것이다. 신라는 홍가시나무가 흔하게 자라는 따뜻한 나라이기도 했었다는 답답한 비밀도 자랄 것이다.

이제 겨우 묘목을 심어놓았을 뿐인데 우람한 풍치를 꿈꾸고 있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60년을 살았는데도 무엇하나 쓸만한 것이 없다. 제집 마당도 제대로 가꾸지 못한 게으름이 홍가시나무 새잎처럼 붉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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