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김치가 詩다
-권선애
생으로 버무려져 겉절이 같은 오늘
눈총에 꼭꼭 눌려 숨이 죽는 성실맨
날마다 시큼한 시어 입가에 스며든다
끓어오른 날들을 냉정하게 가라앉혀
깊은 맛 내보려고 침묵을 첨가하면
숙성된 붉은 마음속 미움도 맛이 든다
익어가는 어깨가 알맞게 지쳐갈 때
맵거나 싱거운 하루 겉돌아 식상해도
서서히 변해갈수록 그 끝은 모두 시다
-아무튼, 김치
똘망똘망했던 가을도 허리를 꺾으려나 봅니다. 억새가 쭉쭉 찢어 놓은 하늘 아래 공연히 드나드는 찬바람을 보면, 올해도 다 간 것 같습니다. 성찰의 “깊은 맛 내보려고 침묵을 첨가”한 코트 깃을 세워 봐도, 금방은 사라지지 않을 듯한 뼈저림이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는 텅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다시 사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일에 필수였던 그때의 김장이, 빨간 시로 탄생 된 것만 봐도요. “겉절이 같은 오늘”, “맵거나 싱거운 하루”처럼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이지만 곳곳에 심어 놓은 사유의 맛을 찾아보게 해요. 이 시조는요.
잘 버무린 김치 접시가 빨간 시가 되어 담 넘어오면요. 이제 여러분은 각자의 입맛으로 김치 맛이나 보면 됩니다. 어디 김치만 시(詩)일까요? 배추 내준 몸이 가려워 박박 긁는 배추밭도, 배추 다 뽑고 난 뒤 버려진 목장갑도 결국엔 “맛이 든” 시가 되겠지요.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함으로 다시 사는 길, “그 끝은 모두 시다”는 걸 김치를 담그던 손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