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갑작스럽게 한파가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 어느 곳을 가봐도 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고 옷깃을 여미며 핏기 없는 얼굴로 오가는 몇몇 노인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은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해도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야간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이 마침내 어느 한쪽을 반드시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는가? 그리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정치판과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국제적 정세와 경제 여건의 급격한 변화는 나라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마음 안팎으로 한파가 무섭게 밀려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11월을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에 있는 국가에서는 대체로 매년 11월을 전후해 1년 동안 추수한 것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추수감사절 행사를 치른다. 우리나라의 추석이 바로 서양의 추수감사절이라고 보면 된다. 이때 사람들은 삶에 대한 근심, 걱정, 아픔, 싸움 등은 모두 뒤로 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신(神)에게 감사하고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해 감사의 축제를 벌인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감사할 만한 건더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들은 우리 손으로 뽑은 지도자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사회의 안녕 복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한 삶은 뒤로 한 채 오직 권력을 뺏기 위해 또 상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지 않는가? 이 땅에는 안타깝게도 정의와 진실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영주시는 장차 도래될 지역소멸에 대비해서 다른 어느 해보다도 첨단베어링 국가산단 기업 유치, 영주호 개발 사업, 도시재생사업,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삶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자신들이 바라는 유익이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주시의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대단히 인색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불만과 불평이 만연돼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그의 ‘인생론’에서 행복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의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불행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감사할 줄 알고, 감사는 삶의 만족에서 온다. 삶이 곤궁하고 어려울 때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걱정하고 있는 문제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나의 내면에서 도사리고 있는 삶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가장 나쁜 내면의 감옥을 만든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의 삶이 우리의 내면을 힘들게 할지라도 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비결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궁핍하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압니다. 나는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족하든 궁핍하든, 모든 형편에 처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이 고백은 비단 기독교인에게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감사의 고백이다.

감사의 계절 11월이 지나고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에 대해 감사하고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를 반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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