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는 희망을 좇아 영상예술의 전문가가 되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건축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는 미디어 파사드 1세대
KBS 등 현장에서 일하다 특수영상 대학교수로 재직 중
사기업, 공기업, 대학 등 가는 곳마다 새 영상 분야 개척
영상 1천여 편 제작...미래 세대 영감 주는 진로 지도 나서
기성세대에게 미술은 화폭에 담긴 그림이지만 움직이는 동영상도 미술에 포함되는 시대이다. 동영상에는 그에 맞는 소리까지 포함된다. 가상 현실 구현의 핵심이기도 하다. 단순 촬영과 편집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영상 예술 개척자 중에는 한국영상대학교 특수영상제작과 황용회 교수가 있다.
건축에도 빛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대형 영상물인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는 건축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환기하며 21세기 건축의 새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황 교수는 미디어 파사드를 구현하는 1세대 작가이기도 하다.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갤러리 ‘즈음’에서 영상 아트展을 열고 있는 황교수를 만났다.
저로선 처음 알게 된 학과입니다. 한국영상대학교 특수영상제작과에 입학하면 어떤 걸 배우나요? 쉽게 설명을 부탁합니다.
특수영상제작과에서는 시각적 특수효과를 구현하는 공부를 합니다. 움직이는 화면(모션 그래픽)이라든가 3D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화면상 옷을 바꾼다든지, 원래는 없으나 있는 것처럼 화면을 구성한다든지, 하늘을 난다든지...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을 실제처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학과입니다. 저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학과입니다.
기존에 없던 학과를 제안하셨다... 옛 선비들은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을 만든 사람을 ‘선생’이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선비의 길을 가시는군요.
아. 그런가요? 몰랐습니다. 과분한 말입니다. 기존 학과로는 다 담기 힘든 새로운 공부 영역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서울로는 언제 가셨나요? 지금의 분야로 나아가는 계기는 어떤 것이었고요?
6남매(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고향에 있었습니다. 봉현초, 풍기중, 영주 중앙고를 나왔습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다가도 5시 반만 되면 칼같이 끊고 TV 만화영화를 보러 집에 갔습니다(함께 웃음). 만화영화에 빠져 ‘저런 만화영화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면 좋겠단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당시 다른 형제들은 집안일을 도왔지만 제가 막내라서인지 부모님이 제겐 일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갤러리 ‘즈음’ 송재진 관장님은 제 미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땐 영상 관련 일을 앞으로 해야겠단 생각도 없었습니다. 시각디자인 전공은 미술 분야로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던 시절입니다. 영상 분야 학과는 없었습니다.
KBS에서 방송 영상 업무를 하셨는데...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서울비전에서 광고 쪽 일을 하다 KBS로 옮겼습니다. 서울비전에서 8년 정도 근무했는데 주로 상업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입사 3년 차에 팀장으로 뛰었습니다. KBS로 옮겨서는 특수 영상 제작 중심의 방송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KBS에는 14년 정도 있었군요.
엄청 빠르게 팀장으로 활약을? 능력을 일찍 인정받으셨군요?
능력과는 별개로 대외적으로 일하기 좋게 하는 방안이기도 했습니다. 방송 관련 업무 협조 파트너들에게 제가 ‘팀장’이 아니면 매끄러운 업무 협조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호칭 때문에 업무 협조가 잘 안 되는 문화는 선비문화가 아닌데요. 선비들은 소통에서 나이나 직위를 따지지 않았거든요. 직책은 중요했습니다만.
선비들이 그런 분들이었단 건 몰랐습니다. 선비문화, 좋은데요.
사기업에서 공기업으로, 그리고 이제 학교에 계시군요. 어디가 가장 좋나요?
교수 생활은 10년 정도 되고요. 저는 다 좋았습니다. 저는 스탠스가 정규직 비정규직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저는 직장에 다녀도 프리랜서 느낌이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도 별로 눈치 안 보고, 제 일은 제가 책임지고 열심히 하는 그런... 그러다 방송 영상 분야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단 판단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까지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석박사 과정으로 공부를 더 하셨군요?
직장생활을 하며 영상이란 게 처음에는 단순히 영상 찍고 편집하는 정도였는데 컴퓨터 그래픽이 가능한 기계, 당시 1대에 7억 원 정도인 비싼 기계를 초창기에 제가 활용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기계를 활용해 영상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정도였습니다. KBS 등 방송사들이 서로 끌어가려고 했지요. 지금에야 모션 그래픽 처리 가능한 컴퓨터가 50만 원 정도이지만 당시로선 그 비싼 기계를 쓰는 사람도 몇 사람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KBS로 또 대학으로...
만화영화에 빠졌던 초등학생이 방송영상을 만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를 하시는군요(함께 웃음).
만화영화를 보면서 방송국에서 일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지만, 사실 방송국은 대단한 사람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방송국에 입사해야겠단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 날 눈 떠 보니 KBS에서 일하더란 그런...(함께 웃음)
황 교수님이 걸어온 길은 지금 대학을 선택하고 또 직장 선택 등 일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는데요? 요즘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이고 평생직장을 권장하지도 않고요.
저는 마음 가는 대로 선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행운의 기회도 있었고 하는 일은 죽기살기로 하기도 했고요. 어떤 사람은 돈을 기준으로 돈을 좇고 어떤 사람은 희망에 포인트를 두고 희망을 좇아가나 봅니다. 희망을 좇아가다 보면 어느덧 그 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달까. 처음부터 뚜렷이 목표를 잡은 건 아니지만 뿌연 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 선택에 따라 선명한 목표로 바뀐 것 같습니다. 제 진로의 고비 고비에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도 지나고 보면 제 희망을 좇은 선택이었다고 할까..
직장생활이든 프리랜서이든 일을 하다 보면 불만도 생기고 하잖아요.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방송국에 있을 때도 자꾸 불만도 생기고 뒤처지는 걱정도 있고, 새로운 무언가가 나왔다는데 등등.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강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박사과정 전에 성신여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강의도 재미가 있더라고요.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고요. 제가 제작했던 영상 자료는 학생들에게 현장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강의 콘텐츠가 되고...
황 교수님 박사과정은 공학쪽으로 하셨다고 하는데 전공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전공을 바꾸었다기보다 우리 분야에서 안 하는 공학 쪽 접근을 하려고 했다 할까요. 석사는 ‘디지털 미디어’로 했는데 제가 부족한 부분을 더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코딩 등 그런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흥미도 없었습니다.
제가 못하는 분야는 협업으로 해결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제 전공을 살리면서도 공학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결정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옛 기준의 공학 분야냐 예술 분야냐 인문 분야냐 이런 것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분야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저는 그곳에서 제 일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현 전공이 어쩌면 대부분 과거 시대 상황에서 필요했던 교과목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지금 시대에 맞는, 더 나아가 미래에 필요한 분야를 찾으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한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으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찍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천재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대신 저는 흐름을 읽는 눈은 좀 있는 것 같아요. 흐름에 맞게 새 분야를 찾아서 그쪽에다 제 포지션을 조금씩 옮겨 놓았다고 봅니다.
새 분야를 찾는다.. 이건 선비들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 만들기인데요. 영주의 옛 선비들은 기존과는 다른 솔루션을 찾고 실행하곤 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저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과 경쟁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다닌 회사가 모두 최고의 회사였는데 제가 변화의 시기에 맞는 포지션에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우물만 파는 건 그 우물이 과거의 우물일 수 있단 생각도 합니다.
저도 진로코칭을 합니다만, 황 교수님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학생들에게 진로지도를 잘 하실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진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학생들과 진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사기업, 공기업, 학교 등 성격이 다른 직장 경험이 있고 일하면서 만난 여러 곳의 상황도 알고 또 제 진로에 대한 고민 경험도 있어 학생들과 진로 이야기를 할 때 더욱 몰입하나 봅니다.
우리나라 시각디자이너 숫자는 매우 많습니다. 시각디자인 전공에 영상도 공부한 사람 숫자는 훨씬 적습니다. 시각디자인에 영상을 하고 공학 쪽의 커리어를 갖고 있는 사람은 더 적고, 거기에 뉴 미디어까지 한 사람은 소수가 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금까지 만든 영상이 얼마나 되나요?
약 1천 편 정도입니다. 영상을 만들려면 영상의 주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전문가처럼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인문학, 의학, 공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점도 제 커리어 행운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분야를 만드실지 궁금하며 고향에서 영감도 받으시고 고향 기여도 부탁합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용회 교수 프로필>
- 봉현초등학교, 풍기중학교
- 영주 중앙고등학교
- 세종대 산업미술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
-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 박사 수료
- (현) 한국영상대학교 특수영상제작과 부교수
- (전) KBS한국방송 특수영상팀
- (현) (사)한국미디어아트산업협회 이사, (사)한국미술협회 디자인분과 이사 및 부위
원장, (사)국제차세대융합기술학회 이사, (사)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 미디어분과 이 사
- (역임) 제4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본선 심사위원,
국립대구박물관 실감콘텐츠 감리위원, 국립공주박물관 실감콘텐츠 감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