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을 연결해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로컬 디자이너를 아시나요”

서울에서 개최한 '영주씨네 상생장터' 부스
서울에서 개최한 '영주씨네 상생장터' 부스

발도르프 교육에서 발견한 자연 토대로 사회적기업 세워

희귀암 투병하며 얻은 자연의 힘 지역사회에 전파하고파

 

이상기후·지역소멸 위기에 매달릴 수 있는 동아줄 ‘자연’

영주,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전환마을’ 가능성 충분해

계속해서 파괴되는 자연은 현대사회에 도래한 후 계속해서 언급되는 단골 문제이다. 1970년대 호주, 생태학자 빌 몰리슨은 대규모 농업이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회의를 느꼈고, 인간이 자연의 원리를 따르는 방법을 고민했다. 어느 날 숲을 걷던 중 그는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토대로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빌은 젊은 대학생 데이비드 홀름그렌을 만나 이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두 사람은 자연의 패턴을 모방한 자급자족 시스템을 설계해 나갔다. 그들은 이를 ‘퍼머컬처(Permaculture)’라 명명하고, 자연의 순환과 상호작용을 본떠 인간이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개념은 호주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며, 농업뿐 아니라 주택 설계와 물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다.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한(Permanent) 문화(Culture)인 퍼머컬처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순환 원칙과 상호작용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는 것에 중점을 둔다. 우리 고장에는 이 퍼머컬처를 기반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지역 농가와 도시 주민을 잇고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일명 로컬 디자이너가 있다.

박정록 대표
박정록 대표

자연이 주는 선물로 일궈낸 도시 생활

자연과 로컬을 연결해 우리 고장을 알리고자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하는 브랜드 ‘시드컴퍼니 언니네’ 박정록(48) 대표는 파란만장한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자연이 주는 힘에 이끌려 우리 고장 영주에 정착하게 된 이주민이다.

박 대표는 남양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생업을 찾았던 도시인으로 “궁금한 것은 알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지역 문화제인 정약용문화제에 우연히 그림으로 상을 받으며 미술의 길을 걷게 됐고, 회화를 전공하기 위한 입시 준비에 전념했다.

준비 과정에서 지도 교사들의 각기 다른 조언들로 혼란이 온 그녀는 그림을 잠시 멈추게 됐고, 그 과정에서 평소 알고 지낸 간호사로 근무하는 언니가 선교 활동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선교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됐다. 박 대표는 그저 해외로 나서는 언니의 자유로움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언니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오랫동안 미대 실기 준비로 멀어진 학업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확실하게 준비하고자 대학 입시를 1년 미룰 뜻을 밝혔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미술반으로 돌아가 산업디자인을 전공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지 않는 전공에 좀처럼 흥미를 갖지 못하던 그녀는 입시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던 시절 눈을 반짝이게 한 메이크업에 다시 한번 이끌려 곧장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서 운영 중인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오랫동안 미술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했던 메이크업 공부에서 비로소 색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박 대표는 방송계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하고,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미술학원과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지금 로컬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게 되면서 접하게 된 발도르프 교육이었는데, 이 교육법은 199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 한국에선 생소했던 것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은 리듬의 중요성을 강조해 자연과 계절, 그리고 하루의 리듬 등 삶을 흐름에 맞춰 경험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아이의 개별성을 존중한다.

독특한 수업법으로 입소문을 탄 박 대표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했으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희귀 질환인 골육종 판정이었다.

'907기후정의행진'을 영주에서 동참
'907기후정의행진'을 영주에서 동참

자연이 주는 힘에 또 하나의 힘을 얹다

일반인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작은 외부 충격을 조심해야 하는 탓에 평소 즐겨하던 레저 스포츠는 물론이고 일상도 모두 포기해야 했던 박 대표는 더욱 자연에 매달리게 됐다. 학원을 모두 정리하고 투병 생활을 하며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바른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바르게 작물을 기르는 농부들과 SNS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였던 박 대표가 그 SNS를 관리하게 되면서 지역 소농들의 농산물 판로지원을 고민하게 됐고, 직접적으로 그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것은 꼭 해내야만 하는 그녀의 뚝심이 또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시드컴퍼니 언니네의 출발점이다.

박 대표는 농장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지역만을 선정해 이주 계획을 세웠다. 처음 제주도로 향하려고 했던 그녀는 돌연 발길을 돌렸다. 바로 영주였다. 박 대표는 “영주는 정말 매력적인 고장”이라며 “농작물이 다양한데다 생산량도 풍부하고 외지로 통하는 교통편도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지역 농가를 위한 판로 개척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도소매를 결정했다. 영주 농산물을 매입해 가공하고 레시피를 만들어 디저트와 같이 현대사회가 원하는 제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언니네 곳간’이다. 이곳에서 계절마다 나는 농산물로 요리 교실을 열고, 과일 쌀강정, 도라지 양갱, 꽃 증편 등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했다.

2022년 4월 주식회사 법인을 설립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기로 한 후 같은 해 12월 경북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역사회공헌형으로 지정받았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기업의 기준을 맞추고, 지역민들에게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자 유통망을 줄이기 위해 1대 1 즉석 제조 판매 등을 구상하며 다시 준비 중”이라고 박 대표는 현 상황을 설명했다.

영주 농산물로 진행하는 요리 수업
영주 농산물로 진행하는 요리 수업
자연을 주제로 씨앗 전시 및 기업 홍보
자연을 주제로 씨앗 전시 및 기업 홍보

자연을 기반으로 지역을 살리는 로컬 디자이너

박 대표는 이렇듯 계속해서 부딪히는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직접 농작물을 기르면서 퍼머컬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나누며 확산하는 ‘언니네 숲밭’을 기획하고 사업을 탄탄히 하고자 작은 밭을 하나 마련했으나 지난해 급작스럽게 내린 비로 인해 산사태가 나 힘들게 마련한 밭은 초토화가 됐다. 지난 6월 그 밭을 겨우 복구하는 과정에서 박 대표는 오래전부터 계속해 왔던 문화예술에서 또 하나의 길을 찾았다.

지역을 기반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주 관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지역 축제를 도왔다. 지난 4월 성황리에 열렸던 ‘풍기벚꽃나드리’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하고, 지난 8월에는 휴천2동 투어맵 제작을 계획하며 문화예술 관광자원으로의 전환을 기획하는 문화예술 플랫폼 ‘영주랑’도 만들었다.

“농업 중심인 퍼머컬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을 택했다”는 박 대표는 땅에서 직접 경작하고 계절별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으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닌, 문화예술로 접근해 사람들을 모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계획 중이다. 그녀는 “영주를 하나의 큰 마을로 보고 있다”며 ‘영주다운, TOWN’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영주라는 지역명과 시내를 뜻하는 다운타운(Downtown)의 합성어이면서도 영주답다는 형용사와 도시를 뜻하는 타운(Town)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외지인이 한 지역을 자연 기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큼 무모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로컬 디자이너의 길은 더욱 좁고 거칠어질 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영주 특산물 활용한 요리 교실 진행 및 홍보 활동
영주 특산물 활용한 요리 교실 진행 및 홍보 활동

또한 그녀는 “영주 서천은 굉장히 아름다운 생태계”라며 “앞으로 이처럼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자연을 토대로 한 문화예술 활동을 계속하면서 사업을 성장시키고 다시 본래 목적인 지역 생태와 농가를 알리고, 우리 고장에서 나는 농특산물로 미각 교육이나 식생활 습관 교육 등 자연 기반 교육도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기후와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현대에서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동아줄은 자연”이라고 말하는 박 대표는 “영주는 도심에서 생산하고 순환하는 삶을 살아가는 전환마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살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예부터 전해져 온다. 당연하고 무심했던 자연이 우리 생명의 근원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연은 인류가 뿌리내리고 사는 터전이자 모든 지구 생명체의 원천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생명인 것이다.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 위기에 처했다. 지역이 소멸하고 지구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보존하며 상생해야 하는지 고찰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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