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시내를 돌아보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그 흔한 현수막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당 지역위원회가 영주시민운동장 근처에 설치한 것과 풍기 읍내에 들어가는 로터리에 설치한 것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지역이 보수성향이 강한 곳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칭찬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 그래도 그렇지 영주문인협회나 문학을 사랑하는 각종 단체에서조차도 그깟 얼마 되지 않는 현수막조차 걸지 않았으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 사회는 ‘한강 신드롬’으로 난리가 아니다. 그런데 한강 신드롬 현상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다. 모든 미디어가 한강이 노벨상 수상으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지 앞을 다퉈 보도하고 있고, 출판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 SNS는 물론이고 온 인터넷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벨상 수상에 산업 자본주의가 틈새를 노리고 침투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정확한 것 같다. 그리고 동네 책방과 도서관마다 책 읽기 바람이 불어오고, 학원가에서는 제2의 한강을 꿈꾸는 학생들이 논술과 글쓰기 수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웃픈 소식도 들리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 작품을 두고 볼썽사나운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익히 알다시피 한강의 노벨 문학상 대표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쓴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태를 배경으로 쓴 ‘작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폭력성의 문제를 다룬 ‘채식주의자’ 등이다. 그러니 한강은 우리 사회의 진보 좌파적 성향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보수층들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몰지각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스웨덴 대사관으로 몰려가 한강의 문학 작품은 한국의 현대사를 왜곡한 소설이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시위까지 벌였다. 누구처럼 노벨상을 타기 위해 의심의 여지가 있는 로비를 한 것도 아니고, 오직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자신의 문학정신으로 승화시켜 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한 소설이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문학정신의 위대함을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푸닥거리를 했으니 정말 어이가 없다. 노벨 문학상 수상의 본질은 사라지고 국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희한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한강의 이번 수상 작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 관통하고 있는 폭력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정치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가 쓴 『배제와 포용』(Exclusion and Embrace)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시사점은 주고 있다. 인간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와 남, 우리와 그들을 먼저 구별하고 그 구별을 통해서 자기가 속한 그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지 타자가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와 타인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형성되고, 여기에서 가해자는 악하고 피해자는 선하다는 도식이 생겨난다. 이것이 한국 현대사 비극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볼프는 놀랍게도 가해자는 피해자를 배제한 점에서 죄를 범했고, 피해자는 미움과 복수심이 자리 잡고 그로 인해 피해자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볼프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들까지도 수용될 수 있는 사고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다. 어느 사람도 포용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아마 한강 자신도 자기 수상 작품을 통해서 가해자들에게는 회개를, 피해자들에게는 용서와 포용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번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을 통해서 배제와 포용의 지혜를 깨닫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