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에게 귀 기울여 살기 좋은 마을을 함께 만들어야죠”
‘주민자치위’에서 자생능력 갖춘 ‘주민자치회’로 거듭나야
각종 수익사업 통해 질 좋은 주민화합 행사 선보여 ‘호응’
가흥가흥교(敎), 가흥가흥수월래가 대표적 주민자치행사
‘지역에서 받은 사랑, 돌려주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저명한 대하소설로, 하동 평사리 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외부 환경에 대응하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발전해 나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공동체의 생존과 저항, 그리고 단합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협력과 화합이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개인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 고장에도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목표로 개인이 힘을 합치기 위해 모인 단체가 있다.
바로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거나 결정하기 위해 지역주민의 대표를 자처하고 나선 주민자치위원회이다. 지난달 28일, 가흥동 메타세콰이어 산책로에서 지역주민의 화합을 위한 ‘가흥가흥수월래’ 행사가 성황리에 열려 이 행사를 주관한 가흥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지역을 위한 사랑의 환원
가흥1동 주민자치위원회 김석호(49) 위원장은 가흥동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경북전문대학교 군사학과에서 교수와 태권도선수단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봉화에서 태어나 초중등학교 시절 태권도를 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매료돼 태권도를 시작하게 됐다는 김 위원장은 경북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
경북대학교에서 사회체육학과(現 체육학과)를 전공한 뒤 동양대학교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체육교육의 길로 들어섰고,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대구에 위치한 보안업체에서 근무했던 그는 영주로 발령받아 처음 영주 땅을 밟게 됐다.
당시 봉화에 계시던 부모님께서 풍기로 이사를 한 상황이라 그도 자연스레 풍기에 거주하게 됐는데, 줄곧 타지 생활을 했던 그는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풍기청년회의소를 찾게 됐다고 했다. 2001년부터 그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지역을 향한 사랑을 키우며 2019년에는 회장직을 맡아 활동에 박차를 가했고, 임기를 마무리하고 경북지구 청년회의소에서 조직관리실장이란 직책을 끝으로 청년회의소의 일대기를 마무리했다.
김 위원장은 “지속적인 지역 단체 활동의 이유는 오로지 하나, 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덕분에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수입의 30%는 지역사회를 위해 쓰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많은 금액을 기부할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으니 몸으로 뛰는 것”이라며 소탈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흥1동 주민자치위, 자생단체로 다시 태어나다
2002년부터 풍기에서 7년 정도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그는 영주로 나와 가흥동에서 새로이 시작하게 됐는데, 그로 인해 사회활동의 장도 자연스레 가흥1동 주민자치위원회(이하 주민자치위)로 옮겨졌다고 했다. 올해로 9년째 주민자치위에서 활동하면서 위원장직을 연임해 어느덧 3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처음 영주로 이사를 온 후 순수하게 봉사할 수 있는 단체를 찾아 고심한 끝에 주민을 대표하는 성격을 띤 이곳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때마침 추천받아 주민자치위에서 활동하게 됐다”며 처음 활동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위원장으로 부임할 당시부터 시에서 보조금이 나온다는 사실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고, 주민자치위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주민자치위를 제대로 알고 운영하기 위해 인천과 하남 등으로 견학과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김 위원장이 여러 주민자치위를 들여다보고 배우면서 깨달은 점이 바로 “주민자치위는 자생 단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여타 주민자치위는 물론 2018년 김 위원장이 사무국장을 맡기 전 가흥1동 주민자치위는 전반적인 사무업무를 행정복지센터에서 전담했고 주민자치위는 실행에 옮기는 단체였다. 그러나 그가 사무국장을 맡게 되면서 서류 작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무업무를 주민자치위 내에서 직접 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민을 대표하는 만큼 지역사회를 계몽해 지역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위원장은 “주민이라면 누구나 위원이 될 수 있다”며 “주민자치위는 주민의 참여 자체가 1순위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주민자치위는 나가서 땀 흘리며 활동하는 단체라기보다는 기획하고 함께하는 도모의 장을 여는 단체”라며 “주민자치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경우 그저 바깥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단체라고들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시에서 일정한 보조금을 지원받아 주민자치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흥1동은 관내 19개의 읍면동 주민자치위 중 가장 비싼 수강료를 받으며 가장 다채로운 주민자치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는데,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에는 성인반은 10개, 아동반은 6개가 있다. 김 위원장은 경기도 하남에서 운영 중인 주민자치프로그램은 120여개 일 정도로 현재 영주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주민자치위가 주민들을 이끌며 대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비싼 수강료로 주민자치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는 반발도 많았지만 김 위원장은 포기하지 않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계속해서 어려워지는 경기로 예산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니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실력 있는 강사를 모시기 위해서는 수익금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주장은 이제 주민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발생한 수익금으로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수강료가 전액 무료인 ‘가흥가흥교(敎)’를 성공적으로 개교했다.
이 학교의 교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우리 지역 아이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들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자치위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지역 아동 참여율을 보이고 있지만, 가흥가흥교는 80명이라는 폭발적인 학생 참여로 인해 영주교육지원청의 지원 확대를 약속받았다.
운영 프로그램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또 하나 진행하는 주민 행사가 바로, 지난달 성황리에 열렸던 ‘가흥가흥수월래’였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축제를 우리 고장에도 열고 싶다는 마음으로 주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열기 위해 기획한 이 행사는 추정할 수 있는 방문자 수만 1천500명에서 2천 명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워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도 많을 만큼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좋은 기회가 다시 주어져서 내년에도 개최할 수 있다면 장소 범위를 좀 더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던 이 행사에 참여한 박성만 경북도의회의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이 울려 퍼져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와 같은 축제를 자주 열어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짧은 인사와 함께 즉석에서 자신의 애창곡을 부를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된 행사에 만족감을 보였다고 한다.
새로움을 두려워 말고 변화해야 발전한다
그가 위원장을 맡으며 또 하나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 바로 회칙이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그는 회원들이 주민자치위에서 6년 이상 활동하면 은퇴를 권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고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김 위원장의 목표는 뚜렷하다. 그는 “이미 전국 여러 곳에서는 ‘주민자치위’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되고 있다”며 “두 단체는 임명권자부터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어 “동장이 임명하는 주민자치위와는 달리 시장이 임명하는 주민자치회는 예산집행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전국 각지에서 공모하는 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이 목표가 너무 간절해 여러 번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 “가흥1동만이라도 시범 지역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 주변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보였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옳다는 것은 추진하려고 하는 무소의 뿔 같은 기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김 위원장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자녀들이라며 소탈하게 웃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산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뛰는 인간으로 남기 위해 노력한다”며 “늘 이렇게 뚝심 있게 프로그램을 끌고 올 수 있는 힘은 열정이 넘치는 주민자치위원들 덕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드린다”는 감사의 뜻을 밝혔다.
공동체의 힘은 사람들 간의 연결과 협력을 통해 실현되는 상호의존적 에너지이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혼자서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서로 돕고 함께 이뤄나가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신뢰와 유대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힘은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주민을 대표하는 주민자치위와 같은 조직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단순히 대표자 단체로 지역 행정을 수행하는 역할을 넘어 공동체의 힘을 집결하고 확장해 마을의 중심이 돼 그 힘이 다시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