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 세계유산 등재의 숨은 공로자, 선비의 미래를 개척하다’

세계유산 등재 표석 제막식
세계유산 등재 표석 제막식
소수서원을 방문한 정세균 전 총리
소수서원을 방문한 정세균 전 총리

16년 세월 동안 서원 위해 헌신한 현대의 진정한 선비

유네스코 등재부터 고문서 봉환까지...서원 발전에 힘써

 

이한동·정세균 등 국무총리급 인물들 원장으로 천거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유림도 계속 변화해야

우리 고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표지판에는 ‘선비의 고장 영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우리나라에서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곳이 여럿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선비의 고장은 바로 영주이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당시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 운동을 벌였던 곳이 우리 고장이다.

또한 회헌 안향 선생과 삼봉 정도전 선생의 고향이자 주세붕 선생이 최초의 서원이자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을 세워 국가적 인재 양성에 힘썼던 곳이기도 하다. 소수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고, 2021년 원외(院外)로 유출됐던 고문서들이 소수 유림의 노력으로 소수서원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이 2022년 소수박물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런 중차대한 소수서원의 역사 한가운데에는 서원을 이끌어가는 집행부 역할을 하는 도감이 있다. 무려 1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원을 위해 헌신한 서승원 도감이 얼마 전 도감 자리를 내려놓고 순흥향교 전교로 취임해 지난 5월 고유례를 봉행했다.

서승원 전 도감
서승원 전 도감

삼년상 치른 현대의 선비가 소수서원 도감으로

서승원(82) 전 도감은 분파(分派)와 이거(移居) 없이 500년을 세거한 ‘새내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한 입향조인 돈암 서한정 선생의 24대손이다.

서 전 도감은 단산국민학교(現 옥대초) 출신으로 당시 단산면 일대 학생들은 모두 소수서원으로 소풍을 떠났고, 그 역시 소풍날 처음으로 소수서원을 방문했다며 소수서원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영주중학교와 영주농업고등학교(現 영주제일고)로 진학한 후에도 어린 시절 소수서원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해 자주 방문했던 그는 1961년 입대하게 되면서 서원 출입이 어려워졌다.

5·16 군사정변을 몸소 겪으며 힘든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후 서 전 도감은 곧장 경찰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합격했지만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동네 이장으로 마을에서 활발히 봉사하던 집안 어른의 권유로 면사무소에서 임시 직원으로 얼마간 일했으나 새로운 진로를 찾고자 농림부(現 농림수산식품부) 유통통계원에 지원해 농산물 생산비와 농가소득, 소비량 등을 조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뜻이 맞아 함께 농협 입사 시험을 치르고 비료 판매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를 시작으로 농협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종사한 서 전 도감은 IMF 사태로 회사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자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자진해서 퇴사했다. 그 후 농사에만 매진하며 소홀했던 서원 출입에 열과 성을 다하던 그에게 요즘 말로 임명장이라 할 수 있는 도감 만기가 2008년에 전달됐다.

2005년 모친이 돌아가시고 난 후 삼년상을 치르며 외출을 삼갔을 만큼 예법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릴 적 집안 어르신들의 가르침의 영향이 컸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도감 만기가 온 것이 유림 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가야 한다는 선조의 뜻이라 생각해 소수서원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말했다.

서 전 도감의 순흥향교 전교 취임 인사 현장
서 전 도감의 순흥향교 전교 취임 인사 현장

소수서원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서 전 도감은 “소수서원은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국가에서 인정한 최초의 서원”이라며 “제사를 지내는 성현의 후손들이 서원의 전반을 맡아 출문 통문(어떤 일을 알리거나 추진하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을 작성한 문서)을 내는 반면, 소수서원은 3월과 9월에 날짜를 정해 안향 선생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유교를 공부하는 유림이라면 누구든지 출입을 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 문화재청이 당시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이 위원장이었던 국가브랜드위원회와 공동으로 서원 세계유산 등재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소수서원을 포함한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업무를 진행해 영주 시민은 물론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차 등재에서 반려됐으나 2016년 등재 재추진을 의결해 이윽고 2019년에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확정받았다.

현재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배용 이사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회 대한민국선비대상을 수상하고, 2020년 최초의 여성 초헌관(조선시대 종묘 제향 때 첫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으로 추대돼 도산서원의 향사를 이끌기도 했다.

서 전 도감은 유네스코 등재 심사를 위해 서원을 찾는 이코모스 전문가들을 맞이하기 위해 유림 어른들께 한복을 갖춰 입자고 제안했고, 5년 동안 계속해서 방문하는 심사위원들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예의를 갖춰 맞이했다고 당시 심사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소수서원을 ‘우리 집’이라고 표현하면서 “집으로 방문해 주시는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복을 모두 갖춰 입고 유림 어른들을 모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이런 모습에 감동해 “소수서원은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서원”이라는 평을 아직까지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서 전 도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므로 모범이 돼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며 겸손한 자세로 “때문에 아무것도 바라거나 생각지 않고 무작정 서원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히 떠올렸다.

또한 그는 2019년 소수서원 장학회를 창설해 지금까지 매년 동양대학교 재학생에게 500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선비를 길러냈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이 선비인성을 교육하고 있는 지역대학에 장학금을 기부한다는 그 의미가 뜻깊다.

각 서원에 기념패 수여하는 이배용 위원장
각 서원에 기념패 수여하는 이배용 위원장

서 전 도감은 “우리 고장 유일의 4년제 대학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며 “이제는 도감에서 물러났으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 나갔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젊은 사람들을 키워야 지역이 클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젊은 시절 다양한 생업 활동을 해오며 가질 수 있었던 세상을 향한 넓은 시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 전 도감은 이한동, 정세균 전 원장 등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인사를 원장으로 천거한 것으로도 세간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서원은 대개 문중의 후손들이 보존과 관리·운영을 맡았고, 문중의 단결력과 의지, 재력은 서원의 위세나 운영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수서원은 다른 서원들과 달리 국가에서 인정한 최초의 서원답게 문중이 아닌 제자들과 지역 유림들에 의해 지금까지 관리, 운영돼 온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는 “조순, 이한동, 이현재 등 국무총리 출신의 원장을 3명이나 배출한 것도 이런 특징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소수서원이 건립된 1543년부터 1888년까지 약 350년간 서원에 입원한 4천여 명의 학생 명단을 수록한 책인 <입원록> 다섯 권 중 제1권과 <원록등본>이 소실된 사실을 깨닫고 서원에 남겨진 대출 문서를 통해 도산서원에 정중히 반환 요청을 했고 2021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극적인 반환식을 성사시켰다.

서 전 도감은 “이를 포함한 고문서 11책이 수개월의 노력과 관계 기관의 협조 끝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당시 소감을 전했다. 덧붙여 “아직 외부로 유출된 20여 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다시 살펴보고 우리 조상이 물려준 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봉환을 고무했다.

선비정신, 넓은 포용력을 가져야 할 때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평안과 화평을 위해 유림에 참여하려면 기존 유림들이 넓은 포용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서 전 도감은 “누구나 마음 편히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서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인간이라면 본디 뿌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므로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자극적인 것만 좇는 현 사회에서 여유와 예절은 필수적”이라는 뜻을 밝혔다.

서원은 고요한 산수에 깃든 영혼의 쉼터이자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서원의 밑바탕인 선비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서승원 전 도감은 그 해답으로 실천과 소통을 제시했다.

모든 생명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는 싹을 틔울 수 없듯이 인간의 생명력 또한 선조의 지혜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옛것이라면 무조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맵고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 지치고 둔해진 삶의 감각을 선조의 지혜로 다시 일깨워야 할 때이다. 서원은 우리 마음속에 책과 산이 어우러진 끝없는 길을 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혜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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