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역사(驛舍)는 그 고장의 얼굴이다. 여객과 화물이 오가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며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서도 길을 안내하는 곳이다. 지역이 담고 있는 정신문화를 사람들이 붐비는 역사(驛舍)에 깃들게 함으로써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대중 속에 스며들게 함이다. 언제부턴가 신역사가 건립되는 곳마다 그 지역이 담고 있는 랜드마크를 컨셉으로, 상징과 은유로 미래 지향적 도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신역사에 담긴 스토리를 지적 자산으로 양산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확장해 나가는 추세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영주역사만 봐도 우리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모티브로, 영주의 정신을 담아 디자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건축 요소에 반영해 전통적 특징을 살림으로써 역동적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영주의 우수한 문화재를 콘텐츠와 연계함으로써 문화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에 신역사(新驛舍)를 통해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성장과 비전을 제시하는, 여객 기능을 넘어 쉼과 문화를 재생산하면서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영주의 신역사는 한옥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했기에 지붕은 처마 형태를 본떴으며, 마루와 의자는 휴게공간과 광장에, 전통문살인 격자무늬는 벽면에, 빗살무늬는 건물 가운데에 배치함으로써 출입문에 품격 높은 영주를 그려냈다. 1층 내부에 배흘림기둥을 세움으로써 이제 영주역에서도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선비가 즐기던 정원을 누구라도 역사에서 즐길 수 있도록 문화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한때 영주역 광장은 소통의 장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로 애틋함과 그리움이 매시간 새겨지기도 했다. 기차역은 누구에게나 추억 하나쯤 간직한 곳이었다. 대중교통이 최고의 이동 수단이던 시절, 많은 이들이 진학을 위해, 입대를 위해, 직장을 위해 플랫폼을 밟으며 꿈을 키우던 곳이기도 하다.

영주는 지금껏 세 번의 역사(驛舍)를 건립했으며 한국철도의 역사(歷史)를 이끌었다. 첫 번째 역사는 지금의 중앙시장과 기독병원 부근으로 1941년에 준공해 1973년 폐역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수송했다. 특히 영동선은 무연탄을 싣고 나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여객과 화물이 선로 위를 달리는 동안 영주의 경제도 함께 성장했다.

두 번째 역사가 지금의 휴천동으로 옮겨지면서 영주는 중앙선과 영동선, 경북선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갔다. 2대 역사는 1967년 준공해 1973년에 현재 자리로 옮겨오면서 영주역의 새로운 역사(歷史)를 쓰게 되었다. 1차 베이비 붐 세대(1954년생~1963년생)와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년생~1974년생)가 성장과 함께 기차로 많은 추억을 쌓던 때이기도 하다.

1970~80년대를 돌아보면 기차역만큼 이동과 휴식의 기능을 동시에 보유한 수단도 없었던 것 같다. 철로를 통한 수화물의 전성시대도 이 무렵이었다. 영주역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으로 다 남길 수는 없어도 그 가치만큼은 시민들의 가슴에 뿌리 깊게 저장돼 있을 테다.

세 번째로 건립된 신역사(新驛舍) 앞에서 뼛속까지 영주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영주역사가 하나둘씩 의미가 깃든 건축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진품과 마주한 듯 자부심이 일기도 한다. 신역사 건립과 동시에 2022년 철거가 이루어질 때까지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한 영주역사는 지역민과 함께 시대를 공유해 나가고 있다. 이제 영주역은 지역민이든 관광객이든 누구나 즐기며 위로받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물리적 광장뿐 아니라 정서적 교감이 형성되는 공간으로서도 그 기능을 다해야 한다.

영주의 자랑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우수한 자연자원과 유불문화가 꽃피운 가치일 테다. 신역사(新驛舍)에 영주의 정신을 담아냈으니, 시민으로서 자부심이 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주다움을 지키고자 건축학으로 영주를 재해석해 역 입면에 나타낸 유형과 무형의 자원,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모여 관광과 문화를 잇는 명소로 등극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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