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저녁에 밝은 전등 아래에서 책 읽기에 좋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 왔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23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2023년 국민 독서실태’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이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OECD가 2017년 발표한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은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이어 독일, 영국 등이 상위 순위에 올랐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에 머물렀다. 노동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중국보다도 독서량이 적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요즘은 책을 가까이하기에 너무도 힘든 세상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베스트셀러로 주목받고 있는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이라는 책을 보면, 현대인들은 인터넷 발달로 인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와 영상 콘텐츠에 둘러싸여 있어서 심각할 정도로 집중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기기 등을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고, 난독 인구가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독서가 외면당하고 있는 시대, 독서 붕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선비의 고장이라고 하는 영주시민들의 독서에 관한 관심은 어떤지 궁금하다. 예로부터 독서로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지 않는 사람은 선비라고 칭하지 않았다. 연암(燕巖)은 ‘연암집(燕巖集)’에서 “선비가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라고 했다. 1880년 윤최식(尹最植) 선생이 선비들의 하루 일상을 기록한 「일용지결」(日用指訣)이라는 책을 보면, 선비는 인시(寅時:오전 3∼5시 사이)에 일어나면서부터 시작해서 해시(亥時:21∼23시 사이)에 잠들기 전까지 거의 하루 종일 독서를 통해 존양성찰(存養省察)했다고 한다.

영주시가 선비의 고장이라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도시라는 명성쯤은 얻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선비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선비’라는 무형의 가치를 축제형식으로 풀어내는 일도 필요하고 또 현대적 의미로 접근해서 일반 시민들에게로 다가가는 노력도 해야 하며, 선비 문화를 상품화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선비 도시라고 일컫는 영주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간판이나 식당 이름, 택시 이름 등 형식적인 것만 무성하고 정작 선비 도시로서 갖추어야 할 내용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마을문고 영주시지부에서 10월 독서의 달을 맞이하여 시민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독서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영주선비도서관(관장 김영규)에서 가족 모두의 독서 활동을 장려해서 지역주민들의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독서 캠페인의 일환으로 ‘책 읽는 가족’을 선정해 시상한 바 있다.

올해에도 영주시 공공도서관에서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책 읽는 문화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 강연, 체험, 전시 등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시민들의 참여가 궁금하다. 다만 지난 7월 26일 영주향교에서 ‘어린이 선비들의 일용지결’이라는 제목으로 ‘선비의 하루’란 체험학습을 진행한 것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유초등학생들과 단위 학교들을 대상으로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영주시민 모두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이벤트성에 가까운 일회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독서를 생활화해야 하는 일차적인 이유다. 모든 시민이 독서를 생활화해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선비 시민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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