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보고 천하에 가을이 찾아온 것을 알 수 있다.[一葉落知天下秋]’라는 시구(詩句)가 있다. 이 말은 북송 말년의 문학가인 당경(唐庚)이 지은 ⌈당자서문록(唐子西文錄)⌋에 당나라 사람의 시구인 ‘산승은 갑자를 헤아릴 줄 알지 못하나 떨어진 나뭇잎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山僧不解數甲子,一葉落知天下秋.]’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당장은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나지만, 이러한 현상을 보고 곧이어 천하가 가을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는 것이다. 참으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선견지명을 가지지 못해 개인은 물론이고 나아가 공동체가 얼마나 많이 치명적인 재앙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었던가?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예는 부지기수(不知其數)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설림훈(說林訓)⌋에 나오는 말을 칠언(七言)의 시구로 만든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은 이렇다. “한 점의 고기를 맛보면 한 가마솥의 맛을 알고 깃털과 숯을 매달아 놓으면 마른 것과 습한 기운을 아는 것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환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무이파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한 해가 장차 저물어 감을 알 수 있고 병 속의 얼음을 보면 천하가 추워질 것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논하는 것이다.[嘗一奱肉.知一鑊之味.懸羽與炭而知燥濕之氣.以小明大.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睹甁中之氷而知天下之寒.以近論遠.]”라고.
가마솥 전체의 고깃국을 다 먹지 않고 한 점만 맛보아도 그 맛을 알 수가 있으며 깃털로는 마른 기운을 알고 숯으로는 습기를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낙엽 하나를 보고 한 해가 저물어 감을 알고 병 속에 언 얼음을 보고 천하가 추워지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눈앞의 현상이 장차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는 선견지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하겠다.
또 같은 책 ⌈회남자(淮南子)・설산훈(說山訓)⌋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은나라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드니 기자가 슬퍼하였고 노나라가 인형으로 장사 지내니 공자가 탄식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은 서리를 보고 얼음을 안다.[紂爲象箸而箕子唏.魯以偶人葬而孔子嘆.故.聖人見霜而知氷.]”라고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이 지금은 비록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지만 이런 욕심이 점점 자라나게 되면 훗날 온갖 사치를 다 부려서 마침내 나라를 거덜을 내게 될 것이라고 숙부(叔父)인 기자(箕子)는 슬퍼하였다. 지금은 노나라 사람들이 비록 인형 하나를 땅에 묻는 장례를 치르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나게 되면 마침내 산 사람을 묻는 엽기적(獵奇的)인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자행(恣行)하는 지경으로 발전하게 될 것을 공자는 미리 알고 탄식하였다.
두 성인 모두 서리를 보고 얼음을 아는 선견지명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주역(周易)・계사하편(繫辭下篇)⌋에 보면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난다.[君子.見幾而作]”라고 하였고 또 ⌈주역(周易)·곤(坤)⌋에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履霜堅冰至]”라고 하였다.
일이 발생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거나 일의 규모가 커지고 나서 그 일을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보이는 조짐(兆朕)이나 조상(兆祥), 기미(幾微)나 낌새 등을 미리 알아차리는 지혜는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다. 미리 알아차리는 지혜, 즉 선견지명을 길러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운명을 맡아있는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그저 범안(凡眼)으로 데면데면하게 보아넘겨서는 안 된다. 미구(未久)에 닥칠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전조증상(前兆症狀)으로 주목하여 보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범안이 하루아침에 저절로 혜안으로 바뀔 리는 만무(萬無)하다. 언제나 우환의식(憂患意識)을 가지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현상을 꾸준하게 관찰하려는 노력이 쌓여야만 가능해질 것이다. 공심(公心)이라고는 별로 없고 오로지 사심(私心)만 가득하면서 공심을 가졌다고 위장하는 사람들은 발목에 차는 물이 점점 불어나 코밑에까지 와야만 비로소 알아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조짐이나 조상, 기미나 낌새를 간과해서는 큰 재앙을 피하지 못하고 재앙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는 선견지명이나 혜안은 지도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모름지기 길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야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아가 우리 공동체가 다가오는 재앙을 미리 피할 수 있거나, 적어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입게 될 것이다. 욕심과 사심을 없애버리고 공심과 순심(純心)을 가지게 되면 결국 보는 눈을 범안에서 혜안으로 바꿀 수가 있고 나아가 현상을 미리 알아차리는 선견지명도 기를 수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