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함께 글나라로 동심여행 떠나는 영주의 방정환”

박근칠 아동문학가
박근칠 아동문학가

스승의 은혜로 선 교단에서 아동문학 꽃피운 장본인

동시 두 편 초등 교과서 수록...‘방정환문학상’ 수상

 

아이들에게 더 많은 창작의 기회 주고파 강좌 진행

힘든 창작환경에도 포기 말고 우리 모두가 글 쓰길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 4월 이금이 작가가 후보에 오르며 ‘K-아동·청소년문학’이 연달아 가치를 평가받아 화제가 됐다.

실제로 유럽과 영미 아동·청소년문학이 100년 동안 쌓은 수준을 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따라잡아 이젠 해외 서점의 아동문학 상위권을 한국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해외에서도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문학작품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내용이 깊고, 다루는 주제가 다양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는 ‘영 어덜트(Young Adult)’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에서도 아동문학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2024년 한국문학신문 공모전 아동문학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박근칠 시인이 작사한 <날고픈 민들레>가 지난 7월 27일, 2024 대한민국 창작국악동요제 발표작으로 선정돼 영주시민의 이목을 아동문학에 집중시키고 있다.

스승의 사랑으로 교단에 서다

박근칠(82) 시인은 6·25전쟁 이후 찾아온 보릿고개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열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고 편찮으신 어머니 밑에서 7남매 중 막내로 성장했다. 소풍날 도시락도 챙기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 담임선생님이 건넨 도시락과 말라리아에 걸려 학교에 나가지 못했을 때 약을 구해와 가정 방문해 준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를 그는 여전히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스승의 사랑은 박 시인을 교육자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그때 받은 스승의 사랑을 갚기 위해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겠다고 결심했다”며 “나는 아직도 스승이 아닌 선생에 불과하다”는 겸손의 자세를 보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박 시인은 2004년 퇴임을 기념하며 산문집 <선생님의 스승>을 출간했다.

1966년 안정초등학교로 처음 부임했을 무렵, 박 시인은 국어 교과서에서 박목월 시인의 시 <아기의 대답>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아 아동문학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록파를 좋아해 대학에 진학해서는 시를 쓰며 신춘문예까지 준비했던 그에게 청록파의 맑고 순수한 동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968년, 아동문학소백동인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아동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1977년 아동문학평론지 ‘가을마당’으로 등단해 지금까지 총 11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박근칠 아동문학가의 저서들
박근칠 아동문학가의 저서들

아동문학소백동인회

아동문학소백동인회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아동문학 동인으로 영주 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이 어린이 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결성한 단체이다. 1959년 8월 18일 부석사에서 아동문학가 윤석중·김성도를 초청해 강습회를 개최한 후 창립했다. 창립회원은 이동식·김한룡·임익수·권기환·강윤제·최영호 등이 있으며 초대 회장은 당시 교육청 장학사였던 김동극이 맡았다.

1989년에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연간집 <푸른산 맷새소리>를 처음 발간했고, 이를 시작으로 매년 창립일에 맞춰 <소백아동문학>을 발간하고 있다.

2002년 5월 1일에는 ‘아동문학의 날’을 제정·선포하고 정기적으로 기념식을 열고 있다. 2015년부터는 영주시가 인문도시로 지정됨에 따라, 그 사업의 일환으로 아동문학소백동인회의 주관 하에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각종 아동문학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초대 회장인 故 김동극 선생을 기리고 평생을 글짓기 지도와 아동문학 교육에 헌신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김동극아동문학상’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제1회 수상자인 강영희 시인의 시상식과 연간집 ‘소백아동문학 32-소백산 아이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어린이 글짓기 대회 현장
어린이 글짓기 대회 현장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문학가로 성장하기까지

박 시인은 “외동아들이자 막내인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해 늘 애틋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글로 남기고자 1983년 첫 시집 <엄마의 팔베개>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어 1990년 <바람이 그린 그림>, 2002년 <햇살이 고운 마을>, 2019년 <엄마는 다 그렇다> 등을 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창작동요대회와 대한민국국악동요제에 선보인 작품들을 모아 동시·동요집 <날고픈 민들레>를 발간했다.

박 시인의 작품은 문단에 널리 알려져 그의 동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1993년 발행된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에 <가랑잎 편지>가, 3학년 2학기 쓰기 교과서에 <나 혼자> 등이 수록됐다.

그는 1984년 아동문학소백동인회장을 비롯해 1994년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장과 2002년 경북글짓기교육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영남문학상과 경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동시 읽는 어머니 모임’을 결성해 독서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박 시인은 정년 퇴임 후에도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을 계속해서 보여왔으며, 그 공로로 2011년 제21회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9월 영주시민대상을 받았다.

현재 박 시인은 영주시가 주최하고 아동문학소백동인회가 주관하는 미래인재육성 프로젝트인 ‘글나라 동심여행’이라는 이름의 인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강의를 수강한 학생 작품 중 우수작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영주시민신문에 매주 소개하고 있다. 이 강의는 처음 동양대학교에서 인문도시 사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영주시청 선비인재양성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동시·생활문·감상문·일기 등 분야별로 나눠 아동문학가들이 어린이들의 글짓기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교직 생활 당시에도 문예반을 담당해 학생들을 모아 전국의 글짓기 대회를 다니며 그들에게 수많은 창작의 기회를 제공했다. 박 시인은 “어린이들이 읽을 도서를 출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과 가까이할 수 있는 독서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 뒤 “어린이들이 좋은 동시와 동화를 즐겨 읽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동시 낭송대회나 동화 구연대회와 같은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즘 방송 매체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을 불러내 어린이 정서에 맞지 않는 가사로 된 트로트를 부르게 하고 상금까지 주며 어른들도 현혹돼 손뼉 치고 즐기고 있다”며 건강하지 못한 요즘의 문화를 꼬집었다. 그는 “어린이는 어린이다운 가사로 된 동요를 불러야 한다”고 강조하며 아동과 아동문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까치홀 앞 '엄마의 팔베개' 시비 건립
까치홀 앞 '엄마의 팔베개' 시비 건립

한국 아동문학의 미래를 꿈꾸며

박 시인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을 “고향 산천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영주의 자연환경, 특히 소백산을 사랑한다”며 “때문에 소백산을 대상으로 한 동시를 많이 썼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지훈 평론가는 아동문학 계간지인 <열린아동문학>에서 ‘소백산 시인, 소백산 시인, 그리고 또 소백산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박 시인의 작품을 평론한 바 있다.

박 시인은 평생을 교단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며 창작활동에 매진한 공로로 인정받아 2016년 모교인 도개초등학교에 교과서 수록 작품인 <가랑잎 편지> 시비가 건립됐고, 지난달 15일 영주문화예술회관 까치홀 앞에 첫 시집 표제작인 <엄마의 팔베개> 시비를 세워 현재 제막식을 앞두고 있다. 이는 동심의 고장 영주를 아동문학교육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척박한 창작 환경에 놓인 문학인들에게 “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열심히 글을 읽고 쓰다 보면 자기 작품에 길이 보인다”고 격려했다. 또한 “책 한 권 내기도 힘든 요즘, 어려운 창작 환경이지만 자신을 표출하는 좋은 글을 창작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고 노력하자”고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박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후 지역에서 인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어린이를 만나왔다”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개인적으로는 동화 창작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나 글자들의 집합을 넘어 인간에게 거울이자 나침반과 같은 존재다. 마음을 비춰 감정을 보여주고 복잡한 세상의 이정표를 찾게 한다. 문학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깊은 성찰에 잠기고, 잊혀진 시간 속으로 여행하며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

아동문학은 유아들이 즐겨보는 동화책과 어른들이 찾아 읽는 소설을 잇는 가교이다. 우리 고장에서 문학이라는 다리를 건너 글나라로 동심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와 훗날 성장통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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