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최고의 권한으로 가장 나답게 사는 용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회관계망이 촘촘히 엮인 밀집된 집단이다. 때문에 거절이 쉽지 않은 구조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을 때 수락할 상황이 아님에도 거절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공연히 거절했다가 관계가 틀어질까 봐, 혹은 상대가 나를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까 봐서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수락을 하기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 거절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소신이 무너지면서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물론 거절당했을 때 흔쾌히 기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절로 인해 인간관계에 틈이 생길 관계라면 애초 건강한 사이는 아니었을 테다. 건강한 소통은 상대가 처한 상황을 헤아려 이해와 공감을 얻는 행위로, 두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다. 그 다리가 부실하다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본인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만 헤아리다 곤경에 빠질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결국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거절을 못 했기에 떠안을 수밖에 없는 낭패다. 거절은 윤리와 상관없는 나의 의사 결정권이며 의지가 반영된 선택이다. 때문에 의사결정에 있어 누군가로부터 침해당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할 용기만 있어도 미움받을 용기는 두렵지 않다. 그것은 가장 나답게 살 용기이기도 하다. ‘미움받으면 어때?, 욕먹으면 어때?’하고 불합리한 요구를 무시할 용기만 있어도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 미움받을 용기는 나쁜 일을 함으로 미움을 받는 게 아니다.

타인을 의식함으로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려 정체성을 망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간혹 ‘미움 좀 받으면 어때’하고 담대히 맞서면 될 일을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 마음에도 없는 수락을 할 때가 있다. 수락 후 뒤돌아서서 바로 후회하면서도 앞에서는 거절할 용기가 없어 더 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수락과 거절은 자신이 갖는 최고의 결정권이다. 그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 소신대로 내 의지를 표하면 될 일을 괜히 남의 평가나 인정에 발목 잡혀 주체적인 판단을 못 한다면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격이 되고야 만다. 인간관계의 열쇠는 반드시 나여야지 타인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진정한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물을 겁내지 않는 기개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하고 싶거나, 옳다고 여긴 일을 실천하는 마음이다. 용기를 실천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바름을 알지만 내 의사결정대로 행사하기엔 여러 걸림돌이 따르기 때문이다.

맹자의 호연지기를 보면 용기는 마음속 올바름에서 온다고 했다. 그 올바름은 의가 쌓여서 생기는 것으로, 올바름에 대한 내면의 지향성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때 그 바름이 몸 밖으로까지 뻗어 나가는 것이다. 호연지기에 담긴 뜻이 세기를 건너온 지금까지 많은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유는 인간의 지닌 원초적 본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오랫동안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냈다. 미움과 용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는 소통으로 이어진 통로였다. 타인의 시선을 거두는 미움이라면 맘껏 사용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나다움을 찾는 일이다.

결국 미움받을 용기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일로 가장 나답게 사는 용기이기도 하다. 미움받을 용기,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움받아도 괜찮은 나를 지키는 일인 것이다. 거절할 용기만 있어도 미움받을 용기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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