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발
-김강호
너를 가만 들여다보면 산 있고 계곡 있고
숨 가쁘게 내달리던 원시의 소리 있고
긴 어둠 강을 건너던 부르튼 뗏목 있다
험한 길 걷는 동안 못 박히고 뒤틀렸지만
속울음을 삼키며 순종해온 너를 향해
무수히 많은 길들이 걸어오는 걸 보았다
새벽녘 경쾌하게 내딛는 너에게서
빌딩 숲 울려나가는 청포도 빛 실로폰 소리
절망도 가볍게 넘을 날개 돋는 소리가 난다
-‘나’보다 발
“경쾌하게 내딛는” 발길이 팽팽합니다. 몸 맨 아래에 붙어, 크고 작은 무게를 감당하며 굴곡진 일상을 거두는 발! 그렇게 받든 존재를 빛나게도 어둡게도 하면서 묵묵한 영향을 주는 발! 그 발에 “산 있고 계곡 있고”, “원시의 소리 있고”, “부르튼 뗏목 있”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처럼, 경험처럼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첩첩 쌓일 동안 새로운 길들이 다가오기도 만들어지기도 했겠지요.
편한 신발과 안락한 차로 좋은 곳만 누빈 발도 있겠지만, 웅덩이를 견딘 몸살로 바닥에 널브러진 발을 만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요. 그러나 그 험한 자리까지 따라와 주는 별빛과 바람과 위로 같은 대접이 있어 위험한 오늘, 지친 오늘의 “절망도 가볍게 넘”을 수 있습니다.
제 발도 뒤틀렸습니다. 걸을 때마다 어기적어기적 한 어깨가 넘어가지만, 정작 뒤틀린 것은 발이 아니라 익숙하기도 전에 내다 버렸던 신념임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쉬고 나면 “절망도 가볍게 넘을 날개 돋는 소리”를 내며 “순종”하는 두 발을 믿기에 건강한 굳은살을 쓰다듬는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