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주는 힘,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원예치료를 아시나요”
자녀와의 소통 위해 배운 심리상담으로 치유원 열어
식물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듣고자 원예치료 시작
원예치유원에서 시작해 치유·교육·돌봄농장까지 확장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힘으로 세상을 밝히고 싶어
생명의 필수 요소로 물, 산소, 영양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생명체의 생리적 활동을 돕고, 에너지원과 성장 재료를 제공한다. 그러나 생명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약물이나 수술로 확실한 치료방안을 세울 수 있는 신체의학과는 달리 정신의학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한 치료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치료 반응 또한 예측하기 어렵고 완치 판정을 내리는 것도 힘들다.
때문에 정신의학에서는 약물 치료 외에도 인지행동치료(CBT) 등과 같은 심리치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심리치료는 내담자에게 필요한 사랑을 보여주고 스스로 찾는 것을 장려한다. 심리치료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의 애착과 친밀감,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감정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은 인간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며 사랑의 결핍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우리 고장 영주에는 생명으로 심리를 치료하는 곳이 있다. 자연이 주는 사랑을 받고, 자연에게 사랑을 주며 마음 건강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농촌 교육농장이자 치유농장인 원예치유원 ‘더 가든(The Garden)’이 바로 그곳이다.
자녀 사랑을 키워 지역 아이들에게 전달하다
장수면 성곡리에 위치한 원예치유원 ‘더 가든’은 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원예 활동을 통해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치유 행위인 원예치료를 중심으로 이를 농업과 결합해 농사를 지으며 치유에 목적을 두는 치유농장, 더 나아가 농업과 원예 활동을 가르치는 교육농장까지 갖추고 있어 그 규모가 제법 크다.
‘더 가든’을 포함한 각종 농장을 산하에 두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새오름’의 권미향(56) 대표는 자녀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시작한 집단상담 자원봉사가 지금의 원예치유원을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결혼 전,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던 권 대표는 1991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영주 시내에서 장수면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교사가 꿈이었던 그녀는 어려운 가정형편과 당시의 사회 분위기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고, 그 꿈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주산과 부기 자격증을 취득하고 방통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녀는 “간절했던 일인 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슬하의 자녀가 사춘기를 겪으며 점점 성장하게 되면서 권 대표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모습을 반성하며 아이들을 잘 키우고자 상담 교육과정을 밟기로 결심했고, 이와 같은 연유로 2008년, 영주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상담자원봉사자연합회에 가입해 2022년에는 회장으로 2년 동안 활동하다 현재는 고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연합회는 학교 현장에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역할을 함께 해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는 과정을 돕고 있다.
그녀는 당시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들이 사춘기가 아니라 내가 사춘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담이 내담자의 치유는 물론 상담자의 성장에도 기여해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탁월한 치료기법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덧붙여 권 대표는 “아이들을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인정해야 한다”며 “어른은 아이에게 항상 무언가를 주고, 가르치는 존재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식물로 마음을 치유하는 ‘원예치료’
오랫동안 상담 봉사활동을 해 온 권 대표는 내담자와 쉽게 닿을 수 있는 매개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매개체로 자연스럽게 식물을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시댁에서는 약초를 주로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 중이었고, 결혼 이후 식물을 늘 가까이 두는 일상을 살게 된 배경이 이같은 결정에 한몫했다. 식물을 심고 기르고 재배하는 과정을 모두 직접 해보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평온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마침내 이를 심리상담에 접목해 보기로 다짐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19년 농업회사법인인 ‘새오름’을 설립해 농장과 치유원 운영을 계획했고, 곧장 원예치료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현재 새오름 산하에 있는 온실카페 ‘메이블룸’은 권 대표의 아들인 김근모(30)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데, 김 대표는 처음 어머니의 사업을 돕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자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농업과 농민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두 모자가 자연을 통한 치유를 위해 학업에 매진한 셈이다. 원예치유원을 개원할 당시 소통의 공간으로 쓸 목적으로 카페를 열었고, 지역 농민을 살리고 상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그저 어머니의 꿈과 열정을 돕기 위해서 시작했던 일이 좋은 흐름을 타고 더욱 커져서 이제는 카페 전반을 책임지는 대표직을 맡게 됐다.
자연을 키우고 농민과 상생하며 식물을 매개로 사람을 치유하고자 문을 연 원예치유원 ‘더 가든’은 현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원예치료 대상의 폭을 넓혀 꽃과 채소 등 다양한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마음의 텃밭도 일구는 식물 재배 활동 프로그램, 식물로 공예품을 만들며 오감은 물론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는 식물&공예 프로그램, 친환경적 재료를 이용한 푸드&아로마 테라피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인격적․교육적 발달이 중요한 유아․아동부터 사춘기를 겪으며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 원인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성인, 운동성과 정신적 질환에 취약한 노인까지 치유원은 다양한 이들을 포용하고 있다. 또한 정신질환이나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도 치유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치유농장은 농촌진흥청 공모 사업에 선정돼 농작업 활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다회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권 대표는 “토마토는 자라는 과정에서 가지치기를 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작물”이라며 “사람 또한 인생을 살며 솎아내야 하는 갈래가 많다는 것을 토마토를 키우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2022년부터는 교육농장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다. 학교 교육과정과 접목해 초등생들에게 자연의 순환과 식물의 생체리듬을 직접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열게 된 것이다. 현재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중학생 대상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촌돌봄농장’ 사업에 선정돼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돌봄-교육-고용의 과정을 함께하며 사회적 농업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권 대표는 “원예치유원을 포함한 ‘새오름’을 통해 지역에서 소외된 이들을 발굴해내며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단기간에 급격하게 자리를 잡게 된 만큼 부족한 부분을 꼼꼼하게 채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현재 목표이다.
그녀는 “사람의 성장 과정은 식물과 닮아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식물도 아플 때 사랑을 쏟아 분갈이도 해주고, 통풍도 도와주며 돌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바로 선다”며 “사회적 약자들도 식물을 돌보듯 들여다보고 애착을 가지며 사랑을 쏟는다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치유원 운영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자연이 바뀌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름다움을 알게 되니 사계절이 흐르는 것에 민감해지고 자연이 주는 가치에 감사할 수 있게 됐다”며 “자연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생명이 자라는 필수 요소는 결국 환경에서 생겨난다. 그 환경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이다. 인간의 한살이는 자연의 한살이와 닮아있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나듯, 자연도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시간을 따라 성장한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의 생애를 거울처럼 비추며, 함께 순환하고 상생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고, 자연은 인간의 손길로 더 풍요로워진다. 다치고 병든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며 성장하는 것은 어두워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통하는 만고의 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