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서 쌓은 근면과 검소의 가치, 고향의 정기를 품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무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추억 대부분 고향 영주와 관련, 직장생활은 오직 ‘POSCO’뿐
포스코의 대표적 사회공헌활동 ‘급여 1% 나눔 운동’ 가장 보람
부모님의 근면생활의 교훈과 삶의 모범, 직장생활에서도 실천
영주의 주거문화 품격 업그레이드 브랜드 도입에 도움주고파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한 기업에 뼈를 묻는 게 쉽지 않은 시대이다. 그럼에도 한 기업에 입사해서 고위직책으로 회사에 기여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포스코 김동희 전무도 그런 사람이다.
김 전무는 1992년 포스코에 입사해 현재 고위임원으로 포스코의 발전에 전념하고 있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현직 인사의 애향인 인터뷰가 여러 이유로 쉽지 않지만 김 전무는 본지의 연락에 인터뷰를 흔쾌히 응해 줘 무척 감사할 따름이다.
영주에서 태어나셨나요? 당시는 형제들이 많던 시절이지요?
당시 친구들은 형제자매들이 여럿이었지만 저희 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위로 누나가 있을 뿐입니다. 형제자매가 많지 않아 그런지 부모님과 주변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들이 늘 당부하는 말씀이 있었나요? 어릴 땐 그런 말씀이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늘 저희 남매에게 근면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치와 낭비는 금지 항목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늘 근면한 생활 태도와 사치와 낭비를 일체 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런 생활이 몸에 익었습니다. 크면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제 습관 속에 부모님의 생활 태도가 배어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게 회사 생활하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비들은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며 실제 모범을 보였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런 선비의 생활 태도를 지키셨군요. 대학에 진학하기 전엔 주로 영주에 계셨나요?
네. 초등학교는 영주남부초등학교, 중학교는 대영중학교, 고등학교는 영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탁구반을 만드셨습니다. 저도 탁구반에 들어가 일과 후에 탁구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대표로 시합에도 몇 번 나갈 정도였습니다. 시합에 나가 게임할 때의 긴장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때 배웠던 탁구가 사회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포스코 입사해서도 탁구동호회에 가입했습니다.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이 만든 탁구반 참가가 인생에 도움이 되었군요.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름답고 그립기만 한데 그치지 않고 삶에도 도움이 되었군요.
저의 소중한 추억은 대부분 영주에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소중한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요즈음도 자주 연락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땐 날씨가 더우면 친구 몇 명이 희방사 밑 계곡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돌을 달구어 삽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젊은 열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계곡물이 너무 차가워 얼음물 같았습니다. 아직도 그 계곡물이 차가운지 궁금합니다.
고향을 떠나 계시지만 고향 연고 지인들과의 연계는 이어지고 있지요? 친구 모임이라든지 그런 모임이 있으면 소개해주시지요.
영주 출신 친구들과 ‘팔도회’라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의 이름을 팔도회라고 한 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한 동무들을 의미합니다. 매달 5만 원씩 회비를 20년 정도 모았습니다. 별로 쓰지를 않아 지금은 제법 거금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재원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지만 친구들이 다들 바빠 희망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좀 아쉽기도 한 점입니다. 나중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면 좀 더 어울려 재미난 곳으로 유람갈 수 있겠지요. 그런 걸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향에서의 추억도 많이 갖고 계시리라 봅니다. 생각나는 추억이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입시 준비에 스트레스도 받는 시기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가끔 친구들과 야구 실내 연습장에 들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자동 공급되는 야구공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습니다. 공을 제대로 맞힐 때 스트레스도 날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안타성 타구를 누가 많이 때렸는지 비교해 가며 스트레스를 날렸습니다. 때때로 안타 기록에 따라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는 등 고등학교의 지친 일과를 조금이나마 위로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을 때인데 건전한 운동으로 날리셨군요?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친구들 6~7명이 함께 내성천 강변 모래사장에 가곤 했습니다. 거기서 노래 부르곤 했습니다. 소주도 몇 잔 하며 함께 노래도 부르는 사이 한 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고등학교 때 음주를 하셨네요?(함께 웃음) 현재 포스코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십니다. 계속 포스코에서만 근무하셨는지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의 직장은 청년기나 지금이나 포스코입니다. 저는 92년 2월 포스코에 입사해서 인사, 노무, 교육 업무를 주로 하면서 직원을 거쳐 지금은 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무로서 노무협력실장을 맡고 있는데 포스코의 노무제도와 노사관계, 협력작업 운영체계 개선과 계약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포스코에서 계속 근무하고 계십니다. 포스코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여러 가지일 것 같습니다. 업무 성과를 높였던 건 당연하다 보시니 사회 공헌 차원의 보람을 소개해주시면?
직원 대의기구와 협의를 하여 사회적 나눔을 함께하자 했습니다. 사회적 나눔의 실천을 위해 급여 1% 나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같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낸 직원 대의기구 구성원들에게 감사합니다. 이 같은 활동은 현재에도 이어져 포스코의 대표적 사회공헌활동으로 꼽힙니다. 현재까지 15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면서 고향의 후배들을 만나기도 하셨겠군요?
몇 년 전 채용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영주 출신 지원자를 면접에서 만났습니다. 반가웠습니다. 포스코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좋은 일자리입니다. 영주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포스코에 많이 입사 지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포스코는 포스코에 들어와 포스코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젊은이들을 찾습니다. 영주 출신의 청년들이 들어와서 회사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주 출신 젊은 사람들이 포스코 지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잠재적 지원 후보자들에게 안내와 홍보를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영주 출신의 청년들 지원이 적었군요. 안내와 홍보가 부족했다 하셨지만 지도 교사들의 지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포스코가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 우리 지역 청년들이 더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 포스코의 채용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포스코와 함께 커나가고 포스코를 발전시키고 싶은 관심있는 영주지역 인재가 많이 지원하길 희망합니다.
고향 관련 활동이나 인연을 소개해 주시지요.
영주는 소백산맥이 북풍을 막아주고 따뜻한 볕이 넘치고 깨끗한 내성천이 흐르는 천혜의 풍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주를 떠나 타지에서 소백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리움과 설렘을 느낍니다. 또한, 향우회 선후배를 만나면 소백산 정기를 받으면서 함께 성장했다는 경험을 공유하면 금방 친근해 지고 동질감을 가지곤 했습니다.
고향 영주와 관련하여 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했으면 하는 일이라도 좋습니다.
앞으로 건설경기 침체 국면이 전환될 경우, 포스코이앤씨 아파트의 하이앤드 브랜드인 ‘오티에르’를 영주에도 건립하여 주거문화의 품격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영주시 당국자 또는 영주시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제안이 있다면?
영주를 소백산이나 철쭉꽃을 연결해 자연 속 명품 둘레길을 적극 소개하고, 지명도 높은 옛 유적을 스토리텔링화 하면 영주가 쾌적하고 품격있는 도시로서 자리매김될 거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비록 몸은 영주를 떠나 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소백산, 내성천, 영주 친구들을 담아 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동희 전무 프로필
- 영주남부초등학교, 대영중학교, 영주고등학교
- 경북대 법학, KAIST MBA(경영학석사)
- (현) 노무협력실 노무협력실장(전무)
- (역임) 제철연수원 입사 후 노무그룹 그룹장, 인사노무그룹장, 외주기획그룹장,
경영지원실장, 노무기획그룹장, HR지원실장, 행정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