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개인이나 단체, 나아가 국가도 각각의 상징물(象徵物)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국가의 경우 그 나라의 자주적인 독립성과 주권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난 시기 그런 상징물을 가질 기회를 무도한 외세에 의해 36년간이나 강제로 박탈당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주권이 이민족인 일본 제국주의에게 강제로 늑탈(勒奪)되어 반만년 이상 유지되던 찬란한 우리의 역사가 공백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모든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우리의 역사 단절을 극복하고 나라의 상징물인 태극기를 다시 자유롭게 휘날릴 수 있는 주권 회복 운동에 나서게 된다.
36년이란 천신만고(千辛萬苦)의 세월을 노력한 결과 마침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光復)을 맞이하게 된다. 광복이란 말 그대로 나라의 빛을 회복한다는 의미로 외세에 빼앗긴 우리의 주권을 다시 찾는 것을 말한다.
그간 나라의 주권 상징물인 태극기(太極旗)가 마음껏 휘날리는 그날을 꿈꾸며 눈보라 휘몰아치는 극한(極寒)의 만주(滿洲) 벌판과 중국 상해(上海)와 중경(重慶), 러시아의 연해주(沿海洲),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만리이역(萬里異域) 남미(南美)의 사탕수수밭에서, 미국과 하와이에서, 유럽에서 등 거의 전구적(全球的)으로 퍼져 살면서 독립운동에 기꺼이 헌신하였다.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1883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 태극기를 공식적으로 반포한 이래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주권을 빼앗긴 이래로 태극기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36년간이나 사용을 금지당했던 태극기가 광복을 맞아 아무런 제약이 없이 사용되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다. 얼마나 애타게 그리며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을까? 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런데 만주에서, 상해와 중경에서, 연해주와 미국과 하와이, 유럽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 태극기를 다시 휘날릴 그날을 기다리며 때로는 한을 머금은 채 눈을 감았고, 또 때로는 감옥에 수감(收監)되거나 악랄한 왜경에 고문을 받는 등 고초(苦楚)를 겪는 사람들도 모두가 그토록 휘날리는 태극기 보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렇듯이 모두가 휘날리기를 고대했던 태극기가 광복으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그런 만큼의 절박함이 사라져서인지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 기념일이 되어도 가가호호(家家戶戶)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내걸지 않고 있다. 극히 일부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심지어는 일제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旭日旗)를 광복절에 거는 사람도 있었다. 이 얼마나 개탄(慨嘆)스러운 일인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이제라도 우리의 태극기는 단순한 주권의 상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나라를 외세에 침탈당해 어엿하게 사용하던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한,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태극기이기 때문에 태극기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모두가 제대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해이해진 국가관, 안보관의 표징이 바로 태극기에 관한 관심의 저조와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으로 지하에 계시는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이 이런 상황을 아시게 된다면 어떤 불호령을 내리실지 심히 두려울 따름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토록 휘날리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 태극기를 우리 후예들의 무관심으로 국가기념일이 되어도 제대로 내걸지 않는 무성의는 마땅히 지적받아야 한다. 또 국가는 모름지기 국민 모두에게 제대로 된 국가관과 안보관 교육을 통해 태극기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제고(提高)시켜야 할 것이다. 나라의 모든 일이 다 중요하겠지만 국가가 있어야 개인도 있는 것이지, 국가가 없으면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된 지에 관해서는 이미 36년의 망국으로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더 이상 이런 교육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모든 국민이 태극기의 소중함과 태극기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확실하게 인식하여 언제나 방방곡곡(坊坊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에 태극기가 힘차게 나부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올해 광복절에는 태극기를 내걸어야 하는 모든 곳에서 모름지기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리는 모습을 모두가 볼 수 있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