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글을 쓴다고 끄적거리기만 하다가 밤을 새웠다. 밖은 아직 희미한데 쓰르라미가 운다. 문득 쓸쓸하다. 오래된 시 한 편이 영화 장면처럼 떠올랐다.

쓸쓸한 길/백석

거적장사 하나 山뒷옆 비탈을 오른다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東風이 설렌다

쑥을 넣고 떡을 해야 하지만 단오 무렵에는 쑥이 너무 쓰다. 그래서 단오떡에는 쑥 대신 잎에 털이 많은 취의 잎을 넣고 떡을 해 먹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수리취다. ‘수리’는 단오端午를 이르는 우리말인데 태양절이란 뜻이다. 수릿날 먹는 떡에 넣는다고 수리취다. 땅버들이나 수리취는 분을 바른 듯 희다. 이 쓸쓸한 거적장사에 소복을 하고 애도하는 이가 이들뿐이다.

죽은 이가 누구인지, 장사 지내는 이와 어떤 관계인지 헤아릴 것도 없이 온 산하가 슬픔에 잠겨 뜨물같이 흐렸다. 그러나 시인은 이 쓸쓸한 주검을 이스라지와 머루가 자라는 볕 잘 드는 곳에 묻고는 수리취와 땅버들과 더불어 서럽게 운다. 동풍에 흐린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비친다. 온기에 겨워 흰 나비들이 춤을 춘다. 쓸쓸하고 쓸쓸한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으니 설레지 않겠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다. 젊어서 외웠었는데 요즘은 뚝뚝 끊어진다.

5행의 ‘이스라치’는 ‘이스라지’를 말한 것이다. 이스라지는 복숭아 모양의 콩알만 한 열매가 달리는 관목이다. 이스라지가 지천으로 자라려면 볕이 잘 들고 주변에 큰 나무가 없어야 한다. 시인은 이스라지가 자라는 양지바른 곳에 고인을 묻었다. 이스라지는 북방계통으로 알려진 식물이나 이산면의 산야에선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영주에 이사 와 뒷산에서 이스라지를 보고 나는 백석 시인을 만난 듯 반가웠었다. 이스라지, 분꽃나무, 올괴불나무, 가침박달 등이 뒷산에서 흔하게 보인다. 그만큼 영주의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7월 17일은 작년 예천 수해 때,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수근 해병의 기일이었다. 경북경찰청은 해병대 수사단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첩한 수사결과서류를 아무 절차도 없이 국방부에 주어버렸다. 그 후, 8개월 동안 수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있더니 법적 근거도 의심스러운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를 그 결정을 핑계로 물에 들어가라고 불법적으로 지시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음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수사외압 사실을 은폐할 핑계 하나를 보탰다.

공익제보자의 녹취록을 통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인 이종호가 VIP에게 로비해 임성근 해병 1사단장 구명 활동이 성공한 듯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건희는 공범들이 수사받고 재판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을 동안 어떠한 수사도 받은 바 없었다. 김건희는 공범이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죄형을 받을 수 있는 약점을 잡힌 상황이다.

공범 이종호가 VIP에 직/간접으로 임성근 구명 로비를 했고, 그 후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화폰도 쓰지 않고 해외로 출장 간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나 전화를 걸어 무슨 지시를 했길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본인이 버젓이 서명 결제한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고 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법 취지를 무시하고 검찰과 공수처에 자신의 측근들을 채워 넣는 등, 자신이 수사대상일 수도 있는 수사외압을 은폐하려 갖은 수단을 다 쓰고 있다. 주가조작 공범들이 벌인 국정농단의 마각이 드러나고 있다.

백석의 시를 읽고 나는 마음이 쓸쓸하다. 정권의 그 누구도 자식 잃은 부모의 쓸쓸한 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식이 왜 탁류에 들어가 죽게 되었는지 밝히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채수근 해병의 부모에게 윤 정권은 수사 방해로 답하고 있다. 자식 잃은 채수근 해병의 부모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모든 부모와 우리 모두를 간교한 법 기술로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윤석열 정권과 정신 나간 여당의 망상을 본다. 따뜻한 시를 읽고도 나는 쓸쓸하다. 몇 밤 자면 오는가, 동풍이 몰아쳐 휩쓸려 갈 그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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