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찬란한 비행을 함께 준비하는 경북항공고”
대학 교수 시절 경험 바탕으로 만든 군 특성화고
항공정비 경력 30년 이상의 전문 인력 교사 임용
민간 항공사 5대 취업 조건...졸업과 함께 완성
미국·유럽 등 해외 진출 기회 제공 위해 계획 중
학교를 무대로 한 성장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악명 높은 학교에 새로 부임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사고와 시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등 혁신적인 교육 방법으로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교사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드라마 중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시대가 급변하며 많은 것이 달라진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인 교육에도 혁신이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 고장에도 혁신의 바람을 타고 하늘을 활개 펴고 비상하는 학교가 있다. 얼마 전 항공산업기사 시험에서 합격률 97%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항공정비 분야 양성 교육기관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경북항공고등학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학파 음악인에서 교육자로
경북항공고등학교 김병호(66) 이사장은 2013년부터 교장직을 맡아 학교를 이끌어 오다 2021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아 학교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기계를 만지고 고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이공계열 대학 진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당시 공대 진학에는 성적 외에 신체검사 또한 중요했고 적록색약 판정을 받아 다른 진로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가창 시험에서 음악 선생님의 눈에 띄어 노래에 대한 재능을 알게 된 그는 성악을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명대학교에 진학해 성악을 전공했다. 그는 학교 내에서도 전공 실기 시험에서 모두 만점을 받고 지방대 최초로 전국 콩쿠르에서 입상할 만큼 재능이 풍부한 음악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직후인 1983년, 김 이사장은 지금의 항공고인 풍기고등학교에서 1년간 음악을 가르쳤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계획 중이던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준비하다 마침내 예술의 도시 비엔나로 떠났다.
히틀러가 입학에 실패한 것으로 유명한 빈 예술대학에서 공부하던 그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모차르트의 이름을 기리며 음악 교육과 연주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모차르테움 대학교에서 국제 여름 아카데미 수업을 듣게 됐고, 그곳에서 만난 교수의 권유로 오랜 고민 끝에 학교를 옮겨 음악 공부에 매진하다 199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김 이사장이 음악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유학생은 귀국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에 따라 모교와 더불어 창신대학교, 경북예술대학교, 대구예술대학교 등에서 대학 강사로 근무했다.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연주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페라는 물론, MBC 가곡의밤, KBS 열린음악회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1년에 참여하는 연주회만 40회에 육박했다고 덧붙였다.
강사와 연주 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체력적 한계에 닿자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1994년 창신대학교 교수에 임용돼 이듬해 한국나사렛대학교로 이적했다.
당시 나사렛대는 음악과를 신설해 아무런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고, 교수로 가게 된 김 이사장이 음악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교육 기자재를 마련하고 교과과정을 편성하며 학과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학생처장을 역임하고 다시 창신대학교로 돌아와 학과장과 교학처장을 맡는 등 학교 경영의 경험과 전문성을 다졌다.
학교에 ‘항공’의 생명력을 불어넣다
그러던 중 2005년, 항공고 개칭 전 영주과학기술고등학교를 운영 중이시던 부친이 작고하며 김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항공고등학교를 맡게 됐다. 그는 과학기술고로 돌아올 당시부터 학교의 위기를 감지했다고 말했다. 대학의 현장 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머지않은 미래엔 학생이 모자를 것이라 판단했고 전국 단위 학생 모집을 계획했다. 그렇게 2006년, 지금의 경북항공고등학교가 탄생했다.
당시 모든 이가 반대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항공 분야가 빨아들이는 자본이 어마어마한 탓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그는 2007년 12월, 국방부로부터 군 특성화 고등학교로 지정받는 것에 성공했다. 항공 분야의 특성화 고등학교는 자체로 독특한 성격 탓에 학교를 운영하는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들은 자동차, 기계, 전자 등을 전공해 비행기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교사들의 전문성부터 키워야겠다는 판단에 순수 연수 시간만 1천800여 시간에 달하는 교육을 교사들에게 제공했다.
항공 산업단지나 항공 회사도 없고, 항공 분야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 산 속에 항공 학교를 설립하고자 한 것은 정확한 산업 흐름을 파악한 덕분이었다. IT와 과학기술로 발전된 5차 산업을 넘어선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항공과 드론이라고 김 이사장은 확신했다.
그의 항공 사랑은 창신대학교 근무 당시 헬기정비과와 항공정비과 개설에 앞장선 것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대학 현장에서 성공한 항공 교육을 2007년 과학기술고에서 또 한 번 실현한 것이다.
학생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학교
김 이사장이 교수직보다 정년 퇴임이 이른 고등학교 교장직을 택한 것은 학생들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며 고향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학교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2013년 교장 부임 이후 그는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좀 더 깊이 있는 교육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론을 가르치는 것엔 문제가 없으나 실무적인 교육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김 이사장은 바로 다음해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정비사과정을 인가받았다. 전국에서 16번째 인가받은 것으로 고등학교로서는 최초였다. 국토부가 처음 거절한 이유도 바로 고등학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정비사 면허 시험 자격은 만 18세 이상인 것을 근거로 삼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는 포부를 내보였다고 했다. 인가를 받고 신입생을 처음 모집한 2014년, 폐교한 봉현서부초등학교 건물에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기술교육원을 정식 개원하며 학생들에게 완성된 교육을 제공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항공고 학생들은 오후 4시 50분까지 인문 교육과정 수업을 받고 기술교육원으로 이동해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항공 교육과정 수업을 받는다. 기술교육원 교사들은 모두 항공정비사 면허증을 소지했으며 30년 이상의 현장 경력은 물론 교육경력도 갖춘 전문 인력이다.
김 이사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국기능대회에 항공 분야만 없는 것을 알게 되자 경북도, 영주시와 협력해 ‘항공기능대회’를 꾸준히 개최해 선수들의 사전훈련을 도우며 2019년 러시아 카잔에서 개최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가 항공 분야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졸업생의 대부분이 군에 진출해 전문성을 쌓고, 이후 다양한 경로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항공정비사 면허증을 취득한 졸업생의 90%는 입대하게 되는데, 병사 생활 후 하사로 진급해 48개월 동안 근무한 후 장기 복무 전환이나 민간 항공사로의 진출을 택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부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항공정비사 경력으로 인정돼 민간 항공사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매년 네 차례 토익시험의 의무를 부여하고, 군 전문학사 학위 과정인 e-MU 협약을 구미대학교, 인하대학교와 맺어 군 복무 중에도 대학 교육을 병행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러한 통합 교육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이 민간 항공사 취업 조건을 만 24세에 완성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항공고
김 이사장은 오랜 기간 교직생활을 하며 가슴에 남았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교사들에게도 늘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배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학생 사랑은 학교가 제공하는 복지에서도 드러난다.
항공고 학생들은 모두 악기와 스포츠를 의무적으로 택해 문화 예술교육을 받고 정기연주회와 학급별 리그전을 열어 배움과 우정을 함께 도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골프, 스키, MTB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7대 캠프도 운영해 학생들은 학기가 끝나면 원하는 분야의 캠프를 떠난다.
그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가장 뚜렷한 이름표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졸업까지 6개 이상 항공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전인격적 교육으로 “학생은 어항 속에 갓 태어난 물고기이고, 학교는 이들이 살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는 존재”라고 설명하며 “그들이 멋지게 바다로 나아가 꿈을 펼치길 바란다”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더불어 “앞으로 교육이 주목해야 할 방향은 국제화”라고 강조한 그는 “미국 FAA 면장과 유럽의 EASA 면장 취득을 위한 유학과 현지 취업을 적극 지원해 학생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장을 열고 싶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학교는 인간이 가장 처음 맞이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어항에서 태어나 교육이란 물과 함께 성장해 더 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갈 수 있는 고래가 된다. 물고기는 자신이 숨 쉬는 어항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한다. 그러므로 학교는 매 순간 발전하는 혁신의 장으로서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도와야 한다.
지금 영주에서 자라고 있는 새끼 고래들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의 멋진 비행을 경북항공고와 우리 고장이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