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영주에서 생산한 체리, ‘최초의 가능성’을 수확했어요”
국내 최초 ‘국내산 체리’ TV홈쇼핑 직판 열어 주목
재배기술 표준화·공동선별 통해 브랜드화가 목표
20브릭스 이상의 높은 당도...풍부한 과즙 ‘자랑’
3월에서 6월 사이 짧은 재배기간 틈새작목 ‘적합’
일상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노래가 종일 머릿속을 맴돌아 흥얼거리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다.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미국 신시내티대학의 제임스 켈라리스(James Kellaris) 교수가 전 세계 인구의 98%가 경험했다고 연구 결과를 밝힐 만큼 흔한 현상이다. 때로는 이렇게 성가신 심리적 현상이 마케팅 전략으로 쓰이며 브랜딩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완벽한 사례가 되기도 한다.
브랜딩이란 소비자로 하여금 그 브랜드의 가치를 인지하게 해 브랜드의 충성도와 신뢰를 유지하는 과정으로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에서 무심코 본 이미지로 상품과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이미지는 바로 ‘최초’가 아닐까?
최근 태풍에도 거뜬하게 나무를 지킬 수 있는 비가림 장치를 개발해 우리 고장 영주의 신소득 작목으로 ‘영주 체리’라는 브랜드를 최초로 만들고자 하는 농업인 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2021년 설립된 영주시체리발전연구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인도 사업가에서 영주 농부로 제2의 인생 열다
영주시체리발전연구회 윤영훈(65) 회장은 서울 태생으로 검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지방 발령을 따라 부산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학공학을 전공했던 윤 회장은 전공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 2003년 친형이 살고 있던 인도로 떠났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먼저 그곳으로 유학을 갔던 자녀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인도에서 10년간 IT 개발 프로젝트팀을 관리하는 사업을 진행하던 중 귀촌에 뜻이 생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곳을 찾던 윤 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석사로 가는 예쁜 단풍길이었다. 영주가 주는 아름다움에 반한 그는 2013년이 되는 해에 곧장 정착을 결정했다. 그는 정착 후 부석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마을을 위해 일하고 주민들과 유대를 쌓았다. 2018년부터 4년 동안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윤 회장은 “우려했던 농촌 현지인들의 텃세는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도움을 무척이나 많이 받아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마을 생활에 빠르게 적응한 그는 영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체리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뛰는 윤 회장이 처음 농사를 시작한 작목은 사과였다. 6천 평이나 되는 부지에서 평생 호미 한 번 손에 잡아본 적 없는 그가 무작정 농사를 시작했던 당시의 상황을 “편안한 귀촌이 아닌 고된 귀농이 되어버린 생활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2021년 체리를 삽목해 첫 수확에 성공했다.
이미 2017년에 농업기술센터에서 과수농가의 경쟁력 향상과 신기술 조기 확산을 위해 과수시범사업을 진행해 영주에서 체리를 심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 상태였으나 윤 회장은 센터와 함께 다시 한번 체리 재배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는 체리 수확 성공과 동시에 체리발전연구회를 발족해 영주에서 체리 농사를 짓는 이들을 돕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산 체리로 국내 최초 직판
현재 연구회 소속 농가는 63호, 활동하는 농가는 45호이며 그중 식재 중인 20호, 수확 가능한 8호 농가가 영주 체리를 알리기 위해 영주시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윤 회장은 청송 사과를 예로 들며 선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과 생산량은 영주가 월등한 데 비해 청송사과를 더 알아주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그렇기 때문에 영주체리를 빨리 알려 선점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윤 회장은 국내산 체리가 아직까지 생소하기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처음 그가 체리를 재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체리나무를 심는 기술이 전무했고 기술이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으며 체리가 자랄 토양 환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체리 수확에 성공하고 난 후 계속해서 최초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모두 체리 앞에 우리 고장의 이름 ‘영주’를 붙이기 위함이다.
윤 회장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체리의 90% 이상이 외국산인데, 일주일 이상 걸리는 수입 과정 때문에 현지에서는 다 익기 전에 미리 수확해 후숙 과정을 거치게 된다”며 “때문에 다소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는데, 국내산 체리는 다 익을 때까지 나무에서 키우기 때문에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12브릭스 이상만 돼도 고당도 과일로 불리는데, 영주산 체리는 20브릭스 이상의 높은 당도를 자랑하면서도 풍부한 과즙과 신선한 과육이 텁텁하거나 질리지 않는 단맛을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부터 현대홈쇼핑과 공영홈쇼핑을 통해 연구회에서 생산한 체리가 직판되기 시작하면서 영주체리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산 체리가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판매되는 것은 국내 최초이다. 윤 회장은 “방송 이후 계속해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영주체리의 브랜드화를 확신했다.
더불어 ‘레알팜’이라는 게임 플랫폼을 통해 체리를 판매하는 등 발전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런 노력에는 모든 체리 농가를 돕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영주 체리를 신소득 작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재배기술 표준화, 균일한 고품질 체리 생산과 공동선별을 통한 브랜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윤 회장의 생각이다.
‘영주체리’가 고유명사가 되는 그날까지
윤 회장의 ‘영주체리 자부심’은 국내 최초 홈쇼핑 직판은 물론 체리 수확을 위한 비가림 장치를 최초로 제작했다는 것에서도 나온다. “체리는 다른 작물과 달리 예민해서 나무가 완전히 자랄 때까지는 충분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윤 회장은 말한다.
체리는 수정 착과 후 경핵기를 지나 착색기를 거쳐 비대기를 지나면 수확하게 되는데, 착색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비를 맞으면 열매에 열과가 생겨 상품 가치를 잃는다. 그렇기에 비가림 장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윤 회장은 “처음 농사를 지을 때 비닐로 비가림 장치를 만들었으나 그해에 닥친 태풍으로 폭삭 주저앉은 것을 보고 아예 새롭게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체리 농사를 짓고 있는 경주, 곡성, 울진 등 타 지역에서도 우리 고장으로 견학을 와 윤 회장이 만든 비가림 장치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체리 농사 매뉴얼을 규격화해 ‘영주’하면 떠오르는 과일이 ‘체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2년 전부터 연간 7회 정도 체리 재배를 정규 교육으로 등록해 운영 중이고 윤 회장은 모자란 부분을 연구회 자체 교육으로 보충하며 영주 체리의 생산 기반을 다지고 있다.
또한 체리는 농가에서도 틈새 작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른 원예작물이나 과일이 많이 나지 않는 6월에 수확하는 데다가 3월에서 6월 사이에만 일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3월에 식재해 6월에 수확과 판매를 모두 마칠 수 있는 것도 큰 이점이다. 윤 회장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체리는 짧은 재배 시기와 일손이 크지 않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 경쟁력과 재배 면적당 수익성이 높아 농업 비수기의 틈새 사업으로 활용 가치성이 있다”며 “영주는 날씨, 기온, 토양 등 환경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영주체리 가격을 일정하게 만들고 브랜드화 시켜 우위를 선점해 모범사례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체리로 웃는 농가가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바람이다.
얼마 전 대전 명물 빵집인 ‘성심당’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을 제치고 ‘지역 명물’이란 타이틀을 유지하며 성장하는 로컬 브랜드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아 화제가 됐다.
이제 지방 소멸은 시급한 사회문제가 됐지만 누군가는 로컬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라는 방증이다. 우리는 이처럼 계속해서 지역을 재해석하고 발전하는 데 주력해 소멸하는 지방이 아닌 명확한 이미지와 신뢰 있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지역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