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태초에 글자가 생길 때 우리 말은 어떤 소리로 읽혔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 중국어 상고한어(上古漢語)에서 東夷語의 음운변천 원리를 적용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최춘태 박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갑골음 시기 해와 달, 별을 모두 “ᄀᆞᄅᆞ”로 발음했다. “가라”가 “나라”가 되고 “날日”이 됐고, “다라”가 되었다가 “달月”이 됐고 “바라”로 변천해 “별星”이 됐다고 한다. 둥근 것이 모두 “가라”였으며 높고 고귀한 것이 “가라”였다고 한다. 현대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대가리”, “항아리”, “눈깔” 등에 있는 “갈”은 모두 둥글다는 뜻이다.

그런데, 꼬챙이로 한쪽 “눈깔”을 찔러 멀게 해 노예로 삼은 시대가 있었다. 금문에 나타난 백성 民은 날카로운 꼬챙이가 눈을 관통한 모양을 보고 그렇게 해설한 것이다. 사냥과 달리 농사는 한 눈으로도 할 수 있다. 한 눈을 찔러 애꾸를 만들면 도망치기 어렵고 쉽게 도망친 자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생겨난 글자가 백성 民 자다.

한편, 사람 人 자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國人이란 말이 나온다. 역사 기록의 國人은 왕을 죽이고 새로이 옹립하기도 하고, 왕을 보좌해 국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왕권이 강력해지면서 國人이 臣자로 대체되었다. 臣民이 신분이 높거나 낮은 모든 사람을 함께 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서세동점의 시기, 서양에서 들어온 nation, people, citizen의 개념을 민족국가, 인민(국민), 시민으로 번역해 사용하면서 人과 民의 계급적 개념이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온 말의 힘이 막강하다. 지금도 농사짓는 사람은 농민이라 하고, 고기 잡는 사람을 어민이라 하지만 그 외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는 民 자를 쓰지 않는다.

나는 국민(國民)이나 시민(市民)이란 말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이치에 밝지 못해 아둔하고 어여쁜(가엾은) 자들이니 가르치고 다스려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말이다. 소위 “국민”이라 불리는 우리는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고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주인들이다. 한자를 쓰려 한다면 “國人”, “市人”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일들이 해괴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실, 국방장관, 해병사령관, 사단장과 일선 지휘관이 휘말려 진실게임을 한다. “석유가 나타났다!”고 선전하며 대통령이 “세계적인 전문기업”이라고 말한 엑트지오사는 웬일인지 주민세를 4년이나 체납한 연 매출 3천만 원 하는 회사였다는, 그런 회사에 이미 70억이나 되는 돈을 주고 받아낸 의견서를 근거로 최소 5천억 원이 들어가는 석유탐사를 계약했다는 이야기에 기가 막힌다.

대통령의 처가 뇌물로 받은 300만 원짜리 디올백이 대통령기록물이니 덮고 가자는 국민건희위, 증거를 조작하여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다 무죄판결이 나자 다시 보복 기소한 검사를 탄핵했더니 기각 평결한 헌법재판소, 도대체 얼마나 더 나쁜 짓을 해야 검사는 탄핵되고 처벌받는다는 말인가. 급기야 검찰이 버젓이 증거를 조작하고, 피고인들을 불러모아 회유하고 말 맞추기 세미나 열기를 일상으로 하질 않는가.

급기야 특수활동비로 검찰청사 내에서 양주며 고량주로 폭탄주를 말아먹고 취해서 싸우고 똥을 싸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는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세금을 깎아주고 표를 모으느라 해마다 60조 원이나 되는 세수를 빵꾸내고 각종 기금을 끌어다 메꾸는 꼼수를 부린다. 지방에 주어야 할 교부금을 기한도 없이 미루고 있다. 세상을 人과 民으로 나누어 보며 역사에 國人으로 기록된 자들처럼 몽매한 民은 조중동이 떠드는 대로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하여 나는, 이후로부터 우리의 의식 속에서 民으로서의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외친다. 民자의 저주에 걸려 노예처럼 굴었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농민 아니고 농업인, 國民 아니고 國人이다. “사랑하는 영주시민” 하고 누군가 말하면 주먹감자 날리며 외쳐야 한다. “나? 너를 고용한 ‘영주시人’이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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