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에 맞는 현대화된 향교와 유림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 따라 향교의 새로운 모습 만들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 통해 한국 향교 선도할 것
유교란 예를 정하는 학문으로 예(禮)라는 것은 사람이나 집단 간의 상호작용 형식을 정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예를 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하는 사람 혹은 집단 간의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관습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써 쉽게 말하자면 서로 존중하는 관습을 만드는 것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에게 경쟁과 갈등은 당연한 사회 구조가 됐다. 그저 고리타분한 동양 철학으로 인식되어 젊은이들에게 천대받던 유교가 지친 현대인에게 화평을 가져다줄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요즘, 영주향교가 문화재청이 공모한 향교·서원 문화유산활용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일 영주향교 명륜당 앞마당에서 ‘영주향교 가무악(歌舞樂) 음악회’가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는 향교 창건 이래 653년 만에 최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림의 저변확대와 향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 음악회를 통해 향교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속에 한국의 향교를 선도하고 우리 고장을 빛내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영주향교는 영주여자고등학교 교정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과 송조 2현, 신라조 2현, 고려조 2현, 조선조 14현 등 모두 25위를 모신다. 특히, 영주향교는 영주의 중등학교 설립 모태를 이룬 향교로서 그 의미가 큰 곳이다.
어릴 적 배운 한문학으로 얻은 유림생활
지난 2022년 영주향교 전교로 취임해 문화재청 공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금동률(78) 전교는 봉화에서 태어나 5살이 되던 무렵 6·25전쟁으로 조모와 단둘이 살게 되면서 봉화 상운국민학교(現 상운초등학교)를 거쳐 영주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좋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3년간 농사에 매진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해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했지만 좋지 않은 형편은 다시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는 그 길로 군에 입대했다. 금 전교는 군 생활 중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금쪽같은 아이를 품에 안았고, 가정을 지키고 꾸려나가기 위해 공직 생활을 결심해 25년간 행정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이산면에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금 전교는 생활 기반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에 뛰어들면서 재종조부께 배운 한문을 통해 다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특히나 명심보감과 소학을 배우며 인간이 가져야 할 참된 인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런 배움은 공직 생활을 퇴직한 후 유림생활의 강렬한 끌림을 느끼게 했다. 금 전교는 도움과 배움을 많이 받으며 함께 지낸 웃어른들의 추천으로 박약회에 입성해 총무직을 맡아 유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됐다.
박약회 총무국장과 성균관유도회 총무국장을 역임하면서 함께 사무실을 쓰던 영주향교에도 관심을 갖게 된 금 전교는 2003년 권석일 전 사무국장의 도움을 받아 향교 장의를 맡게 되면서 유림생활의 기반을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향교 장의로 선조의 가르침과 선비의 자세만을 생각하며 살던 중 2018년 박약회 회장까지 함께 맡게 되면서 우리 고장의 유림을 이끄는 책임감까지 되새기게 됐다.
그리고 2022년, 영주향교의 전교를 맡게 되면서 박약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현재 신세대와 소통하며 현대에 유교 사상을 녹이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전 세대와 함께하는 영주향교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영주시가 주최하고 영주향교가 주관한 ‘향교·서원 문화유산활용사업’은 향교·서원 문화재에 내재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교육·문화·체험·관광 등 융복합적으로 창출하는 문화재 향유 프로그램을 발굴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향교야! 같이 놀자’라는 대주제 아래 ‘일용지결-선비의 하루’, ‘향교에서 즐기는 선비의 가무악’, ‘역사 인물과 떠나는 향교 투어’, ‘나는야! 선비 장원-어린이 과거시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금 전교는 지난 1일 열린 가무악 음악회를 언급하며 “공자는 가무악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분서갱유로 인해 공자가 가무했던 기록이 모두 지워졌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노래는 인간에게 결집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덧붙이면서 향교 최초로 음악회를 개최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듯 영주향교는 계속해서 참신하고 현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선비정신의 저변확대를 위해 한국선비문화축제에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서 선비의 모습으로 영주 유림이 모두 결집해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풍기향교, 순흥향교와의 교류를 통해 영주의 삼향교와 울진향교를 함께 투어하며 각 향교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금 전교는 “선비가 어른의 모습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열두 살 난 아이도 선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비정신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든 포용할 수 있는 범인류적 철학임을 강조하고 있는 영주향교는 오는 10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과거시험을 열 예정이며, 선비의 하루 생활을 12등분하여 시간마다 선비들이 지켜야 할 행동 세칙을 기록한 ‘일용지결(日用指訣)’에 따라 아이들이 선비의 하루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선비들이 뛰놀던 모습을 찾아 향교가 전파 시켜 젊은 세대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유학의 화평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 향교의 현재 가장 큰 목표이다. 그리고 그 목표의 지향점은 성균관 3대 지표인 유교이론의 현대화, 유림조직의 대중화, 선비정신의 행동화로 삼고 있다. 선조의 모습을 현재에 접목시켜 현대화된 향교와 유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로 역지사지의 자세를 지키다
금 전교는 뒤늦게 시작한 향교 생활이 어릴 적 조부의 가르침에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말했다. 늘 가슴에 새기는 문구가 바로 ‘역지사지’인데, 이는 유교에서 본질적으로 강조하는 도덕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힘든 시절, 강하게 뇌리에 박힌 한문학이 준 힘을 유림과 향교 생활을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갈등이 생길 때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금 전교의 또 다른 그만의 계명은 ‘긍정적 사고’로 역지사지의 자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크나큰 지표가 되고 있다.
또한 금 전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도덕’이다. 이는 그가 삶의 신조라고 강조할 만큼 소중한 단어로 본인의 삶을 꾸려나갈 때는 물론 자녀를 교육할 때도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타인을 돌보며 살아가면서 덕을 쌓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어 그는 “유림생활을 하고 향교를 이끌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 젊은 세대의 편견”이라며 “유림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앞장서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그들과 유림이 융화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낮은 연령층일수록 늘 먼저 나서서 정보를 전달하고 함께할 것을 유림에게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삶의 자세가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 전교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향교에 이바지할 것”을 밝히며 “건강관리에 힘을 써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유림생활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참여하고 협조하겠다”고 유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경험보다 나은 공부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경험한 이들이 남긴 생각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일은 최대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일 것이다. 선조들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지침을 남겼고 이는 여러 세대를 통해 검증돼 신뢰할 만한 지혜로 여겨질 만하다. 인간군상이 다양하고 세상만사가 복잡하다지만 그것을 명쾌하게 답해주고 길을 알려주는 목소리는 분명 존재한다.
가장 뚜렷한 목소리는 바로 선조들이 평생을 정진해 일군 깨달음이다. 삭막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맞춰 그 목소리의 주파수를 다시 조정해 매끄럽게 들려주고자 하는 영주향교. 이제는 유학이 주는 화평이 어르신들을 타고 넘어와 파릇파릇한 새싹들에게도 쏟아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