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보훈과 관련된 행사도 집중되어 있고 현충일(顯忠日)도 6월에 있다. 그런데 6월이 지나면 그 관심이 시들해진다. 사실 보훈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다. 이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보훈이 애국을 권장(勸獎)한다고. 효자와 효부에게 상을 주는 이유는 세상에 남의 아들과 며느리가 된 사람에게 효도를 권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그들의 효도에 대한 보상(報償)은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포상(褒賞)은 혹자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상임과 동시에 타인에게 권장하는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보훈 역시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공훈에 대한 보상임과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나서도록 권장, 권유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호국하려다가 목숨을 바친 선열(先烈)들을 위해 많은 사당과 서원, 기념관을 세워서 그분들의 공렬(功烈)을 기리고 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는 관료나 장군, 선비나 학자와 같은 지도층을 비롯하여 의병을 일으켰다가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민초(民草)들까지 포함된다. 그야말로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위인(偉人)들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일본 제국주의에게 36년 동안이나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애쓴 수많은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들과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산화(散華)한 수많은 구국영웅(救國英雄)들을 기리고 위해 현충원(顯忠院)을 마련하여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기념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의 공훈을 잊지 않기 위해 역사에 기록하고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궁중에 세운 누각인 기린각(麒麟閣)에 감로(甘露) 3년(B.C. 53년) 한나라 선제(宣帝)는 흉노(匈奴)가 투항함에 따라 그 이전에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11명의 공신(功臣)들의 화상(畫像)을 그려서 이 기린각에 보관하고 그들의 공훈을 영원히 기억하게 한 일이 있다.
그리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는 하늘에 있는 이십팔수(二十八宿)를 본떠 후한의 건국에 공이 큰 개국공신 28명의 공신을 선발하였고 후한의 명제(明帝) 영평(永平) 3년(60년)에는 운각(雲閣)에다 그림을 그려 보관하고 역시 그들의 공훈을 영원히 기렸다. 또한 당나라 정관(貞觀) 17년(643년)에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도 능연각(凌煙閣)을 세워 공신 24명의 화상을 그려 능연각에 보관하고 그들의 공훈을 영원히 기리게 하였다.
미국도 보훈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확실한 나라라고 하겠다. 특히 1950년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수많은 미군이 전사한 이후 그들의 시신을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본국으로 송환하여 그 공훈을 기리고 있다. 최근까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산화한 병사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본국으로 소환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월남전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런 보훈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결코 포기하거나 잊지 않는다는 확신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보훈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를 위해 특별히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을 잊지 않고 기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로 당사자들의 공훈에 대한 보답임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권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훈을 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도 보훈 사업에 있어서 이전에 비해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솔직히 과거에는 나라가 부강(富强)하지 못해 보훈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나라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훈 분야에 기울이는 관심은 여전히 낮고 투자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에 있다. 이런 사실은 다른 나라가 알게 해서는 안 될 만큼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보훈 사업에 더욱 관심과 투자를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순수한 보훈 사업에 이념이 개재되어 많은 논란을 빚고 있어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하루빨리 이념의 색채를 싹 걷어내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보훈 사업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가뜩이나 관심도 낮고 투자도 미흡한 상황에서 국론(國論)조차 갈린다면 어느 누가 진정으로 공동체를 위해 선뜻 헌신하려고 나서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할 사업 가운데 보훈만큼 중요한 사업도 없을 것이다. 안보도 중요하고 그에 못지않게 보훈도 결코 소홀하게 다뤄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분야라고 하겠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현충일에만 잠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날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무성의(無誠意)한 태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언제나 그들의 공훈을 기리고,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각성상태를 유지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