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청년학교의 문은 배우고자 하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요”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세운 청년학교
높은 합격률과 진학률...다양한 배움의 기회 제공
인류사상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알려진 독일의 사상가 마르크스는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일정하게 개진했고 이후 마르크시즘 진영에서 전개된 교육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는 주로 전면적 인간 발달을 공동체 사회의 형성과 연관 지으며 교육론을 펼쳤다.
마르크스의 교육 사상은 그의 저술인 「경제학-철학 수고」에서도 드러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개인의 발전은 공동체의 발전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진정한 교육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이 사회에서 필수적 요소라 여겨지는 교육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의 중요성은 흔히 쓰는 표현인 ‘먹고 살 만하니’ 부각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기본적인 의식주 요소가 모두 충족된 현대에서 인간이 이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교육이 됐다.
우리 고장 영주에서는 가파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휩쓸려 제때 교육제도의 흐름을 타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있다. 가흥동에 위치한 ‘영주청년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영주청년학교는 올해로 25년째 배움의 기회를 놓친 소년부터 노년까지 모두에게 배움의 기회와 장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으로 뜻을 모아 학교를 설립하다
영주청년학교의 창립멤버이자 현재 교장직을 맡고 있는 이만교(70) 교장은 동산여자상업고등학교(現 한국미래산업고)에서 상업 과목을 가르쳤다.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이 교장은 교직생활을 위해 1979년에 영주로 오게 됐다. 당시 외지인이었던 그가 바라본 영주는 인구는 많으나 안정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적은 도시였다. 교단에서 생활했던 터라 다양한 이유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염려 섞인 의문이 들어 그가 대부로 삼고 의지하고 있던 분께 조심스럽게 학교 설립을 제안했다. 그의 대부가 바로 영주청년학교 초대 교장인 김석일 씨(전 영주시청 국장)이다.
이 교장은 학교를 세울 당시를 회상하며 모든 게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장소와 재정적 문제가 가장 컸다. 김 전 교장이 학교를 책임질 운영위원들을 모았고 뜻을 함께하게 된 사람들과 마침내 1999년 학교를 창립했다. 그는 지금까지 학교 운영을 앞장서서 이끄는 운영위원장의 공이 크다며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당시 뜻을 함께 모았던 이들은 모두 교직에 있거나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학교 운영위원회는 학교의 울타리를 직접 만들어 지금도 그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약 30명 정도로 대부분 현직 교사로 근무하거나 교단에서 일하다 퇴직한 교사이다. 모두 배움에 목마른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자발적으로 교육봉사를 자처한 사람들이다. 직접 수업하지 않아도 행정업무나 학교 관리를 도맡아 봉사활동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에서는 교원자격증을 소유하거나 가르치고자 하는 과목과 관련된 전공 공부를 한 이들을 교사로 선발하고 있다.
학교로 수업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은 150명 가량 된다. 16세 청소년부터 75세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 교장은 현재 1950년생인 최고령 학생이 지난 4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청년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80%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대학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러 다시 학교에 찾아올 때만큼 보람찬 순간이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게다가 청년학교를 통해 대학까지 졸업한 후 다시 청년학교로 돌아와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소중한 인연들도 있어 교육의 선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수업은 오후 7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끝난다. 각 차시 수업은 40분이다. 검정고시 합격을 위한 중등 교육과정 이외에도 초등 교육과정과 문해반도 운영하고 있다. 주말에는 컴퓨터와 한문 수업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잠정 중단 상태이다. 이 교장은 “배우고자 하는 학생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수업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며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든지 학교 문을 두들겨 달라”고 당부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주는 교육자의 이념
이 교장은 뼛속까지 경영학 박사였다. 강연 초청을 받아 대학에서 여러 번 강의할 때 강의의 질과 신뢰의 깊이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는데, 그는 경영학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소비자의 만족이라고 설명하며 금전적 관계에서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는 가르치는 학생은 물론이고 친구와 가족까지 모두 생산과 소비 관계의 일환에서 본다면 본인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위치라고 늘 깨달으려 노력하고 있다. 타인을 생각해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몸속 깊숙이 배어 있는 듯했다.
또한 이 교장은 “전공한 학문이 이익을 좇는 일이다 보니 유연한 사고와 대처에 익숙하다”며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간절함을 보였다. “봉화나 예천, 단양 등 타지에 거주하는 이들도 배움에 대한 열정만 가득하다면 그들의 열정을 꼭 풀어주고 싶다”며 학생들의 자발적 발걸음을 응원했다.
“수업시간은 물론 수업 외 시간에도 학생들과 학교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 교장의 말에서 돕고자 하는 이들이 만든 또 다른 학교가 만들어 내는 작은 사회의 행복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교육자의 절실함도 드러났다.
개인존중으로 꽃피운 교육철학
그는 존중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개인적 의견을 존중하고 ‘이런 것이 있다’는 지식은 제공해야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개인존중 철학은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을 대할 때도 나타났는데, 사회구성원으로서 각자의 몫을 다하는 이들이 학교구성원으로서는 첫발을 딛는 곳이기 때문에 교사는 이런 학생의 입장을 충분히 숙지하고 조심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또한 이 교장은 다양한 유기체가 숨 쉬는 사회에서 인생은 수도관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수도관이라 비유하며 각자의 수도관에서 열심히 흐르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수도관이 설치된 곳이 다양하듯 높은 곳에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그 기틀 안에서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며 채우는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낮은 곳에서 봉사하며 헌신하는 이들로 하여금 세상이 굴러간다며 이타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 감사와 칭송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혼자서 살 수 없으므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교장의 명제이기도 한데,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을 모두 꾀할 수 있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올곧게 존재함과 동시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방도가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교장은 힘닿는 데까지 교육봉사를 계속하며 청년학교와 뜻이 맞고 인간과 교육에 관한 정서가 밑바탕이 된 이들에게 일임해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학교를 지속가능한 교육의 장으로 살려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삶은 그 자체로 과정이다. 인간은 일평생 성장하여 완성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사회는 이런 전체적 인간의 실현을 돕고, 그 실현을 통해 발전한다. 그렇기에 교육은 사회에서 불가피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배움에 알맞은 때는 없다.
사는 내내 성장하는 우리에게 과연 배우기엔 늦은 나이가 따로 있을까. 적합하지 않을 때는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에 닥친 고난과 시련이 배움을 가로막을 수는 있으나 우리는 사는 내내 성장하므로 언제든지 다시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배우기에 마땅한 존재이다.
학교는 생각보다 멀지 않고 교문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자꾸만 배우지 못하고 지나친 그 시간이 떠오른다면 지금 당장 영주청년학교의 문을 두들겨 보는 것은 어떨까. 학교는 언제나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학생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입학 준비물은 배우고자 하는 열정, 오로지 그것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