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시작된 ‘제31회 소백예술제’가 이달 13일까지 2주 동안 공연과 전시를 중심으로 시민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예술제는 역사가 무려 30년이 될 정도로 명실상부하게 영주지역을 대표하는 종합예술제로서, 영주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주지회(이하 영주예총)에서 주관하고 있다. 영주예총 산하 8개 단체(음악, 무용, 연극, 연예 예술, 국악, 문인, 미술, 사진)가 시민회관 공연장과 전시실에서 각각 축제를 펼치는 것을 보면 지역 예술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소백예술제를 비판적으로 보자면 참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소백예술제는 일반시민들의 축제가 아니라 소위 지역에서 전문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의 공연 및 전시이다. 축제의 주체가 전문 예술인들이고 시민들은 그저 관객 내지는 관람자로서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벌건 대낮에 먹고사는 일에 상관없이 시간을 축내기 위해 전시회에 들리는 정도의 베짱이 같은 객체라는 말이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먹고 살기에 급급한 자영업자들이나 한창 농번기 때에 뙤약볕 아래 하루종일 노동하지 않을 수 없는 분들, 그리고 관공서나 일반회사 등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제는 그들만의 놀이인 셈이다.

올해 영주시 본예산 일반회계 중 소백예술제에 편성된 예산은 8천만 원이다. 물론 2주 동안 예술제 행사를 치르자면 많이 부족한 재정이지만, 일반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영주지역에서 예술가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영주시의 지원을 받아 자기들을 위한 행사를 치르는 것이지, 그 예술제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그러니 영주시장이 소백예술제를 축하하는 글에서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통해 예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시민들과 호흡하는 참여예술의 실천의 장이 소백예술제”라고 말한 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원래 예술은 인간 최초의 기본적인 정신활동이다. 굳이 예술의 기원이 뭔지 따지지 않아도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래하듯이 흥얼거리고 또 벽이나 바닥에 자신들의 행동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 원초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예술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쉴러(Friedrich Shiller)는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유희적 충동이 있는 바, 인간이 유희(‘논다’의 의미)하는 한에서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했고,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예술의 목적을 심미성, 유용성, 사회참여 등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예술의 목적을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과 일맥상통하게 볼 필요가 있다. 예술을 빼놓고 인간 존재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무언가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을 세상 속에서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으로 보는 월터스토프(N. P. Wolterstorff)의 ‘행동하는 예술(Art in Action)’의 입장이 옳아 보인다.

예술은 소위 전문 예술가라고 일컫는 엘리트의 전유물도 아니고 격조 높은 교양도 아니고 우리들의 생활양식 안으로 녹아들어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자원이다. 원시시대에 동굴벽화를 그리던 사람이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들판에서 노동하는 사람이나 모두 일상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지역 예술제는 축제의 장소이든, 시간이든, 예술제의 콘텐츠이든 모두 ‘생활예술’의 개념을 담아내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시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예술적 활동, 즉 예술을 실생활의 일부분으로 보고 일반시민들이 직접 예술 활동에 참여해 예술적 가치를 향유하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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