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소비패턴에 발맞춰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대흥물산 내부
대흥물산 내부

가업 이어받아 전국 농산물유통 시장 개척 “탄탄대로”

단순 도매업에서 자체 브랜드 유통, 대량 정선까지

농업의 발전은 인류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인류가 고대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계속 발전시킨 문명의 밑바탕이 바로 농업이다. 농업은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산업이지만 현대에 와선 가장 원초적인 산업으로 분류됐을 뿐만 아니라 기계화 등을 통해 농사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식량이 남아돌게 되자 천대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농산물을 전혀 포함하지 않은 방법으로 영양과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농사는 꼭 필요한 노동이다. 산업화조차 일단 농산물이 남아날 만큼 생산돼야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은 경제학자 대다수가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해방 이후 한국의 농업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농업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으나,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농업 현대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시기에 일어난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 환경이 개선되고 생산성이 향상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해 농업 생산이 다양화되고, 친환경·스마트 농업 등 새로운 농업 방식이 도입됐다.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농산물의 유통도 점차 체계화됐다. 특히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유통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는데, 1985년에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농산물 도매시장의 운영과 관리가 법제화됐다.

우리 고장 영주에도 단순 농산물 도매업으로 시작해 하나의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한 곳이 있다. 장수농공단지에 위치한 ‘대흥물산(대표 장인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인석 대표
장인석 대표

작은 쌀가게에서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

1980년대부터 영주2동에서 곡물을 판매하는 가게로 자리 잡고 있던 ‘대흥상회’를 1994년에 장인석 대표(53)가 가업으로 이어받으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중소기업 ‘대흥물산’으로 탈바꿈했다. 장 대표는 1993년 군대 전역을 하면서 보다 튼튼한 미래를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가게를 확장하고자 마음먹었다.

타지에서 도정된 곡물을 사서 팔다 보니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고, 계속해서 발달하는 교통과 정보통신망이 누구나 원하는 직거래를 가능케 하겠다는 판단 아래 1998년 장수농공단지로 입주한 후 정미소를 갖추면서 사업의 방향성을 탄탄하게 다졌다.

장 대표가 처음 대흥상회를 ‘대흥물산’으로 확장시킨 이유에 성공을 향한 강렬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고생하며 일하는 부모님을 보고 도와드리면서 자란 탓에 그저 빨리 부모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경북전문대학교를 졸업한 후 동양대학교 경영학과에 다시 편입해 학사과정을 밟았고, 사업을 키우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자 여러 선택 끝에 동양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일과 병행한 학업이었던지라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대학생활은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확신을 얻은 시간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며 알게 된 것들이 하나의 강의에 모두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데, 특히나 벤치마킹 같은 사업 전략을 용어조차 모르고 실천하고 있던 와중 강의를 듣다가 소신껏 밀어붙이던 전략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쌀은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가격이 통제되지만 잡곡은 그렇지 않다. 장 대표는 이런 경제적 효율성의 이유로 장수농공단지에 입주해 정미소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택했던 작물이 기장, 수수 그리고 보리였다. 생산 농가의 생산 여건과 품질관리 상태 등을 면밀히 살펴 입고한 적격품을 위생적이고 철저한 도정과정을 거쳐 유통했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2005년, 대경 영농조합법인을 별도로 설립해 농산물 브랜드 ‘아리찬’을 만들었다. 단순 도매업으로는 농산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해 시대 흐름에 따라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놓기로 한 결과였다. ‘아리찬’은 친환경 쌀을 비롯해 30여 가지 곡물을 혼합해 만든 농산물 브랜드로 소포장 단위로 시장에 출하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계속해서 사업을 키우고 싶었던 장 대표의 열정은 정부에서 수매한 작물의 이물질을 정선하는 작업까지 맡아서 하게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비축물자를 입찰받아 정선 작업을 거쳐 위생적이고 체계적으로 보관해 일반 상인들에게 상하차까지 맡아 판매하기도 하고, 정선 작업을 거친 작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납품할 목적으로 사내 창고에 저장해 두기도 한다. 현재 하루에 대흥물산으로 들어오는 곡류만 해도 여러 종류의 콩, 찰벼 등으로 그 무게만 50여 톤에 육박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렇게 정부에서 입찰받을 수 있는 업체가 전국에 10곳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물들을 저장하고 정선할 장비와 환경을 갖추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이를 알고 난 직후엔 최대한 많은 양을 입찰받았으나 곧 작물을 저장할 적합한 환경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여러 건의 입찰을 포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직하면서도 똑똑한 사업가의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 비축물자 입고 현장
정부 비축물자 입고 현장
곡물 저장용 저온 창고
곡물 저장용 저온 창고

발전을 위한 여러 방향의 발자국

장 대표는 앞으로 계속해서 사업을 이끌어 가기 위해선 국산 곡류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해 여러 나라에서 수입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곳은 중계무역 업체가 많은 대만이다. 일부 곡류를 제외하고선 도정 하지 않고 작물을 들여오면 관세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지타산에 잘 맞는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곡물과 맛이 비슷한 나라를 파악해 중국의 동북삼성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캐나다, 페루, 칠레 등 다양한 국가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농사 인구 또한 고령화돼 농사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에다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농사의 기계화가 잘 돼 있는 것도 한몫해 국산 작물 값이 폭등한 지 오래”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같은 이유로 장 대표는 가공과 유통의 전단계로 직접 친환경 농산물을 대규모로 경작하는 기업형 농업을 추진하고자 친환경 퇴비 생산업체인 ㈜경진농업회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농가 50가구를 모아 국가 지원 사업에 도전해 보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주변의 좋지 않은 시선에 회의를 느껴 손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농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남아 있어 지금의 퇴비 생산 일을 계속 추진하고자 했는데, 빗발치는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안동에 조성해 13년째 퇴비를 생산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농약을 1년만 치지 않아도 친환경 농산물이라 인정받았으나 이제는 농약을 3년 이상 치지 않아야 친환경 농산물, 4년 이상 치지 않아야 유기농 농산물로 인정받을 수 있게 규정이 강화됐다.

장 대표는 친환경 농산물이라 해서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맛이 더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농약 없이 3년 이상을 버티려면 병충해에 강한 작물만을 고집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는 자신의 오류를 덤덤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무던한 참어른의 자세를 보였다.

캐나다산 귀리 입고 현장
캐나다산 귀리 입고 현장

천천히 성장해 효율적이고 커다란 운영을

무던한 자세는 장 대표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이기도 했다. 그는 “삶은 연속해서 즐거운 가운데 반복해서 고난이 닥쳐오는 과정”이라며 “힘듦을 인정하고 주저앉기보다는 닥쳐오는 고난은 당연히 맞이해야 할 하나의 계절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또한 장 대표가 기업을 운영하며 본인 스스로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천천히’라는 부사다. 그는 “몸이 바쁘면 안 된다”고 항상 말한다며 일의 단계를 먼저 파악하고 천천히 작업을 시행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부탁한다고 했다. 현재 장수농공단지에 5천400평 정도의 부지에서 15명의 직원과 함께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이들과 함께 대흥물산을 몸집이 큰 업체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일은 키울수록 쉬워진다”고 말하는 그는 한 명의 직원이 여러 가지 일을 하기보다는 하나의 일에 파고들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최적화된 사업과 업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소비패턴은 계속해서 바뀌는 추세이므로 이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유연하게 사업 방향을 움직이는 것이 장 대표의 또 다른 목표이다.

세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커질수록 살기는 쉬워진다. 우리는 다양하게 기계화되어 발전된 문명 속에서 살면서 삶의 편리함을 찾았다. 그러나 발전은 파도를 타는 것과 유사하다. 흐름 속에 잘 녹아들어 익사하지 않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굽이치는 물살을 유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결코 산업의 한 분야나 1인분의 삶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더불어 발전하는 인류와 문명에도 가장 중요한 이치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이치는 우리가 계속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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