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꽃 진 자리마다 초록이 무성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야생식물이지만, 일정한 공간에서 한데 어우러지니 하나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야생식물의 싱그러움이 그 어느 때보다 생명력을 자랑하는 계절이다. 야생식물 중에서도 유독 웃자라는 종이 있는가 하면, 더디지만 안정된 모습으로 천천히 자라는 종도 있다.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의 천변 풍경은 소소하지만 설렘으로 다가온다. 늘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 천변을 걷다 보면 새 생명을 부여받은 듯 감사로 이어진다. 한 명, 두 명 시민의 걸음이 모여들 때마다 천변은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천천히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맨발로 걷는 사람,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사람 등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서로 다른 모습이 천변과 어우러지니 생동감이 넘친다. 늘 맞이하는 새날에 자신에게 부여될, 책임져야 할 그 자리를 생각한다. 불필요하게 타인의 자리를 기웃거린 적은 없었는지를 말이다.
간혹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산책로를 점령하는 야생식물이 눈에 띈다. 다소곳이 제 자리에서 성장을 이어가는 종이 있는가 하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잎을 뻗어 남의 집을 기웃거리는 종도 있다.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게 때론 힘자랑으로 보이지만, 주어진 그 시간은 늘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뻗어 나간 그 잎들은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터, 아무리 돋나 보이려 해도 세상살이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가을이 되면 모든 잎은 무서리 된서리 맞다가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생명을 다하게 된다. 당장은 영역이 넓혀지는 게 영예로운 것 같아도 어느 시점에서는 그 영토 확장이 욕심이었음을 알게 될 테다.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면 될 일을 괜히 남의 자리 기웃거리다 아니 한 것만 못한 웃음거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 맞지 않는 자리에 올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자리가 자신에게도 불편하지만, 타인에게는 더 큰 어려움을 준다는 사실을.
어떤 조직이든 안정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의 배치가 필요하다. 필요한 재능을 가진 이가 그 자리에 앉지 못하면 조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 어색함이 주는 부자연스러움은 불편을 넘어 역량 발휘에도 걸림돌이 된다. 조화를 이룬다는 건 원활한 소통이면서 내 자리를 찾는 일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불편을 생각하면 억지스러움만큼 미련한 일도 없을 테다. 사람에게 부여된 자리는 그 조직이 필요로 한 사람만큼 안성맞춤은 없을 터, 합리적이고 효율성 있는 조직문화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여럿이 함께 어우러졌기에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하나의 별만 반짝인다면 과연 우리가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수많은 행성이 은하계에서 한데 어우러져 세상을 비추기 때문에 우리는 천상이 펼쳐놓은 멋진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행성 중에 더 반짝이는 별이 있을 테고, 덜 반짝이는 별도 있을 터, 그 별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 만큼 빛을 발하기에 아름다운 은하가 그려지는 것이다. 행성 중에는 아무리 빛을 반짝여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별도 있을 테다. 보이지 않는 별마저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에 멋진 밤하늘이 펼쳐지는 것이다.
조화로움에 담긴 뜻을 생각한다. 조화롭다는 건 모순되거나 어긋남 없이 서로 잘 어울리는 상태를 말한다. 함께의 가치가 내포한 화합이기도 하다. 어긋남이 없다는 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과의 조화로움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마주한 대상과 조화를 이룰 때 마음에는 참 평안이 깃든다. 조화를 이룬다는 게 정량적 수치로 나타나는 결과물은 아니지만, 함께 하는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함으로 누리게 될 기회만은 분명하다. 내 자리를 알고 그에 만족하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괜찮은 삶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를 생각한다. 주어진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그게 맞다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자리가 분명하다. 그게 바로 내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