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나무의자

                              -권상진

 

관절에 못이 박힐수록 의자는

점점 바른 자세가 된다

 

생각이 무거우면

부처도 자세를 고쳐 앉는데

 

의자라고

다리 한번 꼬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는가

 

못은 헐거워진 생각을 관통하고

너머의 삶을 다시 붙잡는다

 

돌아눕고 싶은 밤이 있었고

돌아서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온몸에 박혀 올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치며 다시 살아볼 궁리를 한다

 

하늘도 긴 날을 삐걱거렸는지

밤이면 못대가리들로 촘촘하게 빛난다

 

-단단한 시, 무른 시론

“생각이 무거우면/ 부처도 자세를 고쳐 앉는데// 의자라고/ 다리 한번 꼬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는가” 이 놀라운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의자를 보고 통상적인 내 마음을 쓴 게 아니라, 몸을 기울여 조목조목 쓰다듬어 보면서 끝내는 내가 의자가 되어 말했기 때문 아닐까요.

시를 쓸 때 나를 빼 버리고 사물의 입장이 돼 보면 한층 깊이 있는 시가 됩니다. 예를 들면 애완견을 만지고 난 뒤 개털이 묻었을까 봐 손을 씻는 것은 개 주인 입장이고, 애완견은 나(애완견)를 만지기 전에 먼저 손부터 씻어 달라고 개 주인에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람 관계든 시를 쓰든 내 마음과 내 입장을 빼 보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거기다, 한 가지 말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은유 몇 가닥 얹으면 더 좋겠고요. 이 시처럼요.

“온몸에 박”힌 나이로 세상의 허름한 자락에 섰을 때, 위로 같은 나무의자를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자는 ‘내게 한번 앉아봐요’라고 몸을 내밀 테고요. 그러면 골절된 듯 삐걱거리던 삶도, “자세를 고치며 다시 살아볼 궁리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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