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일반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변한다(panta rhei)’라는 명언을 해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있다. 모든 사물과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고 매 순간 달라지고 있어서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현상적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진짜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만물이 변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는 만물의 존재 방식이자 보이지 않는 원리이다.

현대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온갖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변화를 일으키고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변화의 노예가 되어 시대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이끌려 살아가는 데 있다. 세상은 모두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영주시민이라고 해서 시대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난 5월 25일 국립산림치유원에서 있었던 ‘장기요양요원 역량강화교육’에서 송호준 영주시 부시장은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변화하는 영주시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재 영주시 인구는 10만 명에서 40명이 부족한 상태로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고, 노인 인구는 영주시 전체 인구의 32.4%인 30,800명이고 2040년이 되면 무려 50%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시장을 위시해서 모든 공무원이 하루를 멀다 하고 베어링 국가산단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절체절명의 정신으로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또한 영주시는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곳곳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고 있지만 신통치 않아 보인다. 26일에 막을 내린 소백산 철쭉제를 보면 그 분위기를 금방 알 수 있다. 인근 단양군에서도 소백산 철쭉제를 했는데 관광객이 무려 30만 명이나 몰려와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영주 소백산 철쭉제는 동네 행사처럼 초라하게 쪼그라들지 않았는가? 단양군은 영주시에 비해 인구가 1/4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작년 기준으로 보면 철쭉제에 투자하는 비용이 영주시의 4배에 달하고, 철쭉제를 찾은 관광객의 수는 무려 영주시의 20배에 달한다고 하니(본지 5월 23일 자) 그럴 만도 하다. 이런 현상을 보면 위기의식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비관적 현상들을 보면 답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불변의 법칙을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다.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을 쓴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은 최근 발표된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이라는 책에서, 급변하는 시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중에서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할 때 한 사회가 발전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언급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둘은 공존할 수 없는 정반대의 태도로 느껴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둘 중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두 입장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다는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말은 미국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미국인의 25%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주식 시장이 89% 폭락하던 비관적 상황 속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에게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유해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도래될 것이라는 낙관적 태도를 외쳤을 때 대공황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라.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라는 하우절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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