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주저앉은 이들의 삶을 재활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죠”

직원 교육 현장
직원 교육 현장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

소외계층에게 사회의 생명력 선사하고 싶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은 여타 질병과는 다른 취급을 받아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정신질환을 신들의 저주나 초자연적인 힘의 결과로 여겨 종종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치료를 받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신질환을 악령이나 마녀의 소행으로 보아 종교적 처벌을 가하기도 했으며 16세기 이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첫 정신병원이 설립됐다. 이 시기의 정신병원은 주로 격리와 감금의 장소로 사용됐고 환자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정신질환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필리프 피넬(Philippe Pinel)은 파리의 비세트르 병원에서 환자들을 사슬에서 풀어주고 인간적인 대우와 치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을 기점으로 정신질환을 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과학적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의사들이 노력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 정신질환이 마음의 무의식적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1950년대에 향정신성 약물이 개발되면서 정신질환 증상을 관리하는 데 새로운 막을 열었다.

의학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현대에 들어서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괴성을 지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들에게 서슴없이 정신병자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시선은 흔하다. 그러나 정신질환 또한 질병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적절한 약물과 적합한 치료가 동반된다면 반드시 개선될 수 있는 병일 뿐이다. 정신질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복지법이 1995년 정신보건법으로 제정돼 17차례의 개정을 거친 뒤 2016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으로 시행 중이다.

우리 고장 영주에도 정신질환자의 복지를 위한 움직임이 1980년대 중반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5년, 영주지역 사회복지시설서비스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회복지시설 ‘십자정신요양원’이 바로 그 첫발자국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정신질환자들에게 재활의 희망과 의지를 심어 주고자 했던 십자정신요양원은 이제 더 나아가 노인복지까지 신경 쓰는 영주 최대 의료복지타운으로 성장했다.

김필묵 윤향숙 부부
김필묵 윤향숙 부부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이 쏘아 올린 의료재단의 공

십자정신요양원은 현재 ‘새희망힐링스’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시설과 장비를 보강했다. 이 요양시설은 우리 고장의 의료복지타운인 ‘명품힐링타운’이라 불리는 곳에 있으며 이곳은 지난달 최신형 재활로봇 3종을 도입해 화제가 된 재활전문병원인 명품회복병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품힐링타운을 조성한 영주의료재단 김필묵(61) 이사장은 두부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4년제 대학에 대한 열망을 버리고 경북전문대학교 식품영양과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무허가 시설에 방치돼 있던 정신질환자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들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해 보호하고 치료하겠다고 결심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정신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김 이사장의 아버지가 바로 십자정신요양원(現 태훈의료복지재단)을 설립한 고(故) 김태영 씨이다.

김필묵 이사장
김필묵 이사장

김 이사장은 1987년 요양원의 총무를 맡아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에 박차를 가했으며 1993년에는 원장으로 취임해 약 10년간 우리 고장에 살고 있는 정신질환자 복지에 앞장서 왔다. 2004년부터는 정신의료기관인 ‘새희망병원’을 열어 정신질환자가 다양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나서고 있다.

그는 이 병원을 건축하기 위해 건설회사를 새롭게 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내가 알고 짓는 것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병원 건물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고, 건축하는 동안 잘못된 사항은 바로 수리하고 보강할 수 있어 효율적인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이 병원은 현재 명품힐링타운의 시초가 됐다.

환자를 위한 마을이 조성되다

김 이사장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소외계층에 눈을 돌렸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 시대의 흐름을 통해 집에서 요양할 수 없는 노년 인구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11년 노인전문요양원인 ‘새희망실버힐스’를 개원했다. 그리고 2013년 정신질환자를 위한 의료시설을 구축했던 것처럼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인 ‘명품요양병원’을 개원했다. 명품요양병원을 개원한 지 10년이 된 해인 지난해, 재활로봇 도입으로 재활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 화제가 된 ‘명품회복병원’을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만을 생각하며 좇은 결과였다.

김 이사장은 사람이 주도하는 재활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신체적 에너지는 한정적이지만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의 수나 정도의 심각성은 결코 한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해 재활로봇의 도입을 추진한 것이다.

그는 재활로봇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요즘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많은 환자가 그에 맞는 다양한 의료혜택을 볼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또한 재활로봇을 계속해서 시연해 보고, 그 효과를 알리기 위해 이번 달까지 환자들에게 로봇재활치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환자들이 완쾌해 퇴원하고 난 후 다시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할 때마다 더 나은 환경과 방향으로 병원을 운영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이들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던 활기찬 사회인이었음을 문득 깨달아 서글퍼질 때가 있다고 했다. 덧붙여 정신질환자의 경우 질병 인식을 하지 못해 쾌유가 늦어져 장기간 입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저는 의료재단을 이끄는 사람이지만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시설 좋은 병원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환자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김 이사장이 환자들의 고충을 항상 생각하는 간절함을 드러내며 한 말이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 소통

현재는 원활한 병원 운영을 위해 재단을 두 개로 분리했다. 김 이사장이 맡고 있는 영주의료재단은 명품요양병원과 명품회복병원을 운영 중에 있다. 그 외 정신질환자를 위한 시설인 새희망병원과 새희망힐링스, 노인요양시설인 새희망실버힐스는 ‘태훈의료재단’ 산하에 있다.

태훈의료재단은 김 이사장의 아내인 윤향숙 이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두 부부가 소외계층을 위한 힐링마을 운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는 직책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늘 인지하고 이로 인해 커지는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슴에 새기며 재단 운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임을 늘 기억하고 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며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을 스스럼 없이 생각하고 있고, 덕분에 발전하는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것을 얻는다고 말했다.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병원 운영 외의 사회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2000년에 영주청년회의소 회장을 맡았고, 2001년에는 경북지구청년회의소 회장을 맡기도 했다며 젊은 피가 끓어올랐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오로지 해야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이끌던 그때, 자존심과 사기 증진을 위한 욕심은 정말 대단했다”며 “대인관계를 넓히고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소통관'에서 진행하는 직원과의 만남
'소통관'에서 진행하는 직원과의 만남

김 이사장이 강조하는 소통의 중요성은 병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병원 내에는 ‘소통관’이라는 이름의 큰 세미나실이 있다. 이곳은 원래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는데, 새롭게 단장해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단순한 회의실로 쓰이진 않는다. 직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재단 내 직원이라면 누구든 이곳에서 카페처럼 휴식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이 소통관에서 매주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TQM(품질관리)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직원들과 만남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

재단 내에서는 기존 직원과 신규 직원을 나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의료 관련 지식은 물론 환자 존중과 회복을 위한 태도와 같은 CS(고객응대서비스)까지 범위가 넓다. 재단의 크기가 커 모든 곳에 손이 닿을 수 없으니 직원에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병원이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신뢰와 신용을 우선시하고 직원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모든 직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더 낮은 자세로 그들을 존중한다며 이 모든 것이 신뢰의 시작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인생에도 사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대화하고 배우며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김 이사장은 “불필요한 자존심은 굽히고 신선하고 발전적인 인간상을 배우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지역 소외계층을 올바른 생각과 기준으로 돌보며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스트레스가 가득한 세상에 뇌졸중과 뇌경색 환자가 늘어날 것을 예측과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며 “이에 맞춰 의료재단을 계속 보강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후배에게 물려주고 자리에서 물러나 가족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소탈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은 바로 대화를 통한 소통이다.

우리는 말로써 많은 것을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어쩌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된 이들에게도 가장 절실한 것은 서로 대화하며 사회를 형성하는 생명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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