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냉장고 문짝에 노란색 포스트잇

                                               -이토록

 

간이며 쓸개, 팔딱거리는 심장

잘 얼려 두고 가요

배고플 때 드세요

말랑한

혀조차 굳는

어둑한

생의 저녁

 

일생을 여닫고도

캄캄했던

너의 안쪽

무엇을 찾기도 전

마주친 써늘한

당신이

차려놓고 간

사무치는

시 한 편

 

-당신의 마음에 포스트잇(이름)을 붙인다면

생활은 쓸고 닦아도 나아지지 않지만,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만큼은 삶의 꽁꽁 언 겨울을 견디게 합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것만큼 위대한 일도 없으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쑥쑥 머리 쳐드는 사랑이 있는 한, 조금 더 용기를 키워 당신을 업을 수 있으니까요.

얇은 미련과 알 수 없는 난처가 섞인 불안을 안고,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어둑한/ 생의 저녁” 지친 어둠을 여는 순간, 나직한 말을 건네는 포스트잇이 보입니다. “일생을 여닫고도/ 캄캄했던” 삶에 빛을 켜며 배부른 말을 걸어옵니다. 오직 당신을 향한(혹은 우주를 향한) 번짐과 스며듦으로요.

기억 환기를 위한, 계획적인 삶을 위한, 혹은 사정을 알리기 위한 포스트잇이 냉장고 문에서도 노랗게 팔딱거립니다. “배고플 때 드세요”라는 마음을 읽는 순간, 당신도 분홍색 포스트잇에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라고 쓴 짧은 한 줄을 냉장고에 붙일지도 모릅니다. 짧은 쪽지에 번져있는 우주, 그것을 이어받은 또 다른 우주에 스며드는 마음, 그게 사랑인 줄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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