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천자문은 옛날 서당에서 초학(初學) 학동(學童)들이 가장 먼저 읽었던 책으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 책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천자문 정도는 아주 우습다는 듯이 말을 쉽게 하고 있으나 정작 이 책을 정말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자문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그리 간단한 책이 아니라고 분명 생각할 것이다.

천자문은 모두 천 개의 글자, 1구(句) 4(字)자 250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 운자(韻字)가 달린 사언체(四言體) 고시(古詩)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양(梁)나라 무제(武帝)인 소연(蕭衍:502-549)이 여러 왕들에게 서법(書法)을 가르치려고 은철석(殷鐵石)이란 사람에게 서성(書聖)인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쓴 비문(碑文) 가운데 중복되지 않는 천 개의 글자를 골라 탁본(拓本)을 하게 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탁본한 글자는 서로 뒤섞여 질서가 없었고 또 뜻이 통하지 않아 도무지 서법의 자료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양나라 무제는 당시 재사(才思)가 출중했던 산기시랑(散騎侍郞)으로 급사중(給事中)이던 주흥사(周興嗣)에게 운자를 달아서 뜻이 통하게 해달라고 명하였다.

명령을 받은 주흥사는 하룻밤 사이에 이를 연구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천자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룻밤 사이에 정력(精力)을 다 소비하여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져 버려 조선과 일본에서는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는 주흥사가 죄를 얻어 죽게 되었는데 양무제가 그의 재주를 아껴서 천 개의 중복되지 않는 글자를 주면서 하룻밤 사이에 뜻이 통하게 하고 운자를 달아서 문장을 만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니 주흥사가 감옥에서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만들고 머리털이 하얗게 센 백수(白首)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양나라 무제가 명하여 주흥사가 편집해 낸 책이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천자문이란 책이 만들어지게 된 유래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했으나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천자문 내용 가운데 우리들이 꼭 실천해야 할 내용이 있어서이다. 그것은 바로 “망담피단(罔談彼短)하고 미시기장(靡恃己長)하라.”의 구절이다.

‘망담피단(罔談彼短)’은 다른 사람의 단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세속의 필부필부(匹夫匹婦)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상사와 노가리는 씹어야 맛’이라고 하는 말에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하는 버릇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흉보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劣等感)의 표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결여(缺如)된 방증(傍證)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남의 단점을 말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수양이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이다. 군자는 자기 자신을 수양하기를 힘쓰기 때문에 타인의 장단점을 점검할 여가가 없다.

따라서 남의 단점을 말할 겨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남의 단점을 말하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이다. 대구에 가면 운경재단(雲耕財團)에서 설립한 곽병원(郭病院)이 있다. 이 병원의 설립자인 고 곽예순(郭禮淳) 원장은 생전에 ‘남의 말 좋게 하자.’란 캠페인을 널리, 적극적으로 펼친 바가 있다. 남의 말을 좋게 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좋게 말하지 않아 우리 사회는 한순간에 말의 야만시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다. 진정 좋은 말을 들으려고 하면 먼저 좋은 말을 상대방에게 하자. 이런 의미에서 이 ‘망담피단(罔談彼短)’은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선비의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미시기장(靡恃己長)’은 자기의 장점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장점을 과신(過信)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단점을 함부로 말하게 된다. 자기의 장점을 과신하게 되면 마치 자신은 아무런 결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이것보다 위험한 생각은 없다. 세상에 어디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은 언제나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이런 항목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의 장점을 믿는 사람은 이미 자만에 빠져 더 이상 진보를 할 수가 없다. 진(秦)나라 말기 은사(隱士)인 황석공(黃石公)이 지은 '소서(素書)'에서는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孤莫孤於自恃]’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걸은주(夏桀殷紂)는 자기의 재주를 믿었고 진경대부(晉卿大夫) 지백(智伯)은 자기의 강함을 믿었으며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는 자기의 용기를 믿었고 서한(西漢) 말기의 왕망(王莽)은 자기의 지혜를 믿었으며 당나라 대종(代宗) 때의 재상 원재(元載)와 덕종(德宗)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 노기(盧杞)는 자기의 교활함을 믿다가 망하였다. 자기를 믿으면 바깥에 기운이 교만하여 선(善)이 귀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선을 듣지 않으면 외로워져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桀紂自恃其才.智伯自恃其强.項羽自恃其勇.王莽自恃其智.元載盧杞自恃其狡.自恃則氣驕於外而善不入耳.不聞善則孤而無助.]

그러하므로 '명심보감(明心寶鑑)' 「존심편(存心篇)」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총명하고 생각이 밝아도 이를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어도 이를 겸양으로 지키며 용기와 힘이 세상에 떨치더라도 이를 겁냄으로 지키고 부로 사해를 가지더라도 이를 겸손으로 지키라.[聰明思睿.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振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라고. 우양겁겸(愚讓怯謙)의 의미와 가치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절대로 자기를 과신하지 못할 것이다.

천자문의 이 두 구절은 바로 우리 자신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경구(警句)요 잠언(箴言)이기에 모두가 명심하여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천자문은 초학(初學) 학동(學童)들이나 배우는 책이라고 가볍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성인(成人)들도 관심을 가지고 이번 기회에 천자문을 한 구절 한 구절 뜯어가며 찬찬히 읽어서 현대판 선비가 되도록 각자가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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