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신 취업과 창업으로 특수 장갑 분야의 외길을 걷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고교 시절 봉현서 철길 따라 자전거 통학 아련한 추억

고교졸업 후 친구가 다니는 회사 입사해 장갑과 인연

 

외국인 쓰지 않고 직원과 고객의 신뢰 경영 추구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이 중요 “직접 해봐야 안다”

생산현장에서
생산현장에서

1990년 회사 설립 이후 30여 년을 넘게 장갑 원·부자재만 연구 개발하며 한 길만을 고집, 지금은 세계 유수의 스포츠 글러브, 워킹 글러브 메이커에 수출하는 회사가 있다.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기능성이 뛰어나고 과학적인 소재를 개발해 소비자와 바이어의 인정을 받는 고급제품을 착한 가격에 널리 공급하기 위해 전 임직원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회사, 영민섬유의 창업자 이영환 대표를 만났다.

우리고장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 출신인 이 대표는 1979년 골프장갑 생산 회사에 첫발을 디딘 후 1990년 특수 장갑 분야로 창업 후 외길을 걸으며 현재 창업 34주년을 맞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는 바쁘다. 챙겨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출장 중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이 대표를 방문 인터뷰 대신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태어나고 자라신 곳이 어느 마을인지요? 당시 가족 상황을 포함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봉현면 두산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거기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폐교된 봉현서부초등학교 18회, 풍기중학교 24회 졸업입니다. 고등학교는 영주고등학교 다녔습니다. 제가 3남3녀 중 첫째입니다.

아버지는 50대 후반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생존해 계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15년을 더 계셨는데 어머니는 효부상 탈 정도로 할아버지를 잘 모셨습니다.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지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욕먹지 않으며 사셨다고 합니다. 제가 이만큼 세상살이하는 것도 그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영주고에 진학하셨으면 공부를 잘하셨겠는데요? 어떻게 등교하셨나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장남인 제가 좀 더 큰 사회로 나가길 바라셨습니다. 저도 영주고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그런 제 생각도 아버지 열망의 압력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함께 웃음). 집에서 거리가 멀어 처음엔 상망동에 사시는 고모댁에서 한 학기 있었습니다. 아래윗방 생활이라 편치 않았습니다. 눈치도 보이고... 그래서 두산리 집에서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눈치 보기.. 어릴 때는 다 그렇지요(함께 웃음). 두산리에서 영주고까지, 매우 먼 거리인데 어떻게 다니셨어요?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했습니다. 자전거 탈 때가 많았습니다. 버스는 지금과는 다른 모양의 옛날 버스입니다. 버스 지나가면 먼지가 뽀얗게 이는 도로였습니다. 도로 먼지를 피해 철길 보수하는 분들이 다니는 철길 좁은 길을 자전거로 이용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입니다. 아침 일찍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에 다니니 역무원에게 걸리지도 않았고요. 학교 갈 때와 집에 갈 때 각각 1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학창 시절 어떠셨나요? 사업적 기질이 그때부터 있었나요?

성격상 그랬는지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업 체질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농사짓기가 그냥 싫었습니다. 밥만 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안양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다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우연히 고향 친구의 친구인 영주종고 나온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지금까지 같은 업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은 안 나왔습니다. 남들이 가니까 가는 건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주)영민섬유 전경
(주)영민섬유 전경
특수장갑
특수장갑

회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는지요?

섬유산업 중 장갑 만드는 사업입니다. 보통 추울 때 끼는 장갑을 생각하는데 아이템이 참 많습니다. 모든 스포츠는 장갑을 끼거든요. 골프, 풋볼, 야구, 스키, 스노우보드, 테니스 등등 많은 곳에 장갑이 필요합니다. 특수 분야라 할 수도 있고 틈새 분야라 할 수도 있지요. 관련 회사에 1년인가 근무하다 군 제대 후 동종업계 다른 회사를 갔죠. 당시만 해도 군 제대 후 대부분 복직하는 분위기였습니다만 다른 회사에 입사해 근무하다 자립했습니다.

일찍 사업을 시작하셨군요.

저는 큰 조직에서 승진해 많은 사람을 통솔하기보다 전문적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하던 장갑 원부자재 쪽으로 사업을 시작했지요. 처음엔 자재 생산보다 원부자재 소싱을 했지요. 영어를 잘해야 하더라고요. 영주고를 다니며 영어 공부 좀 했던 게 희열을 주더군요. 생산 현장에는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 시절 정말 영어를 많이 써야 했어요. 외국 수출품인데 컬러 이름부터 영어였거든요. 영주고를 진학하라던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함께 웃음).

영어를 잘 구사하셨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영어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부족하고요. 저는 영어를 잘 활용하는 역할은 아들에게 전가했습니다(함께 웃음). 아들이 무역과 영어를 공부하게끔 했어요. 영어로 하는 비즈니스를 위해 아들이 커서 영어를 잘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10년 이상 기다렸던 것 같아요. 아들이 제 권유에 반발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들은 지금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출장 다닙니다. 아들이 대학 다닐 때 공부를 안 하더군요. ‘영어만 잘해라.’라고 했습니다(함께 웃음).

사업하시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요?

생각에 그치지 않고 해 보는 게 중요하다 봅니다. 한 번 해보면 요령도 생겨 쉽잖아요.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하면서 좀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발을 담가 봐야 그 세계를 알거든요. 실패도 해봐야 알거든요.

저는 정주영 회장님을 너무 좋아합니다. 존경합니다. 회고록도 보고 관련 유튜브도 봤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지만, 대학 나오고 대학원 박사학위 가진 사람을 활용하면 그게 비즈니스고 사업가라 생각합니다. 혼자 다 할 수 없잖아요. 제가 잘하지 못하고 배우지도 못한 걸 하는데 제가 제대로 할 수도 없고요. 그런 게 ‘윈윈’이라 생각합니다.

한 분야의 사업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세상 변화가 심한지라 사업 유지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저는 계속 한 방향으로 가려 합니다. 제가 잘하지 못하는 건 직원들이 알아서 잘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직원 복이 있나 봅니다. 제가 60대 후반에 들었습니다만 열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만 올인하고 싶습니다. 이 분야만 파고들어도 할 게 많습니다. 다른 사업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직원 복을 가지셨나 봅니다.

직원을 제가 내보낸 적이 없어요. 거의 장기근속자입니다. 외국인은 한명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냐?’란 질문도 받는데 지금까지 그냥 잘 버티고 있습니다.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장 입구에서 하남기업인협의회 산악회원들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장 입구에서 하남기업인협의회 산악회원들
2024재경영주시향우회 신년회
2024재경영주시향우회 신년회

사업을 하면서 남들이 어렵다는데 추진한 사업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중국 지사 설치가 2007년이거든요. 다들 어렵다고 사업 그만두는 때였는데 저는 ‘지금이 적기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세계 제조공장으로 우리나라에 중요합니다. 여러 달 홍콩에서 심천을 지나 몇 개 지역을 쭉 답사하며 지사 위치를 정했습니다. 영주종고 출신의 그 친구가 중국에 있었는데 사업장 물색, 중국 지인 소개 등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기업인 모임 등 활동도 하시지요? 기업경영이 애국이기도 합니다.

제 사업장이 하남에 있습니다. 하남기업인협의회 회장을 했습니다. 경찰서, 시, 여야 단체, 교육, 사회복지 등 여러 분야에 이름을 올려 장학금 지급, 학생들 진로체험 지원, 기업인 건강을 비롯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만 부끄럽지요.

고향은 지금 지역 소멸 걱정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자란 고향, 당연히 발전해야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영주시 인구 18만’ 내용의 프랭카드가 육교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전국을 다녀보고 중국도 다녀보면 인구 유입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을 끌어들이는 명문으로 만들고, 관광객이 찾는 관광개발을 해야 합니다.

최근 신안군에 갔더니 대단하더군요. 예산을 어떻게 유용하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영주의 산세가 참 좋은데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저것 벌리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 다른 곳이 모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영주가 많은 복을 받고 있는데 그 복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재경 영주고동창회장 등 고향 관련 활동의 주축도 담당하셨습니다만.

벌써 여러 해 전이네요. 그땐 책임감을 느끼면서 활동했습니다만 아쉽습니다. 재경영주향우회에도 시간 나는 대로 참석합니다. 활발한 활동 수준은 아닙니다만 고향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힘을 잘 합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지역주의가 고향 사랑이란 선을 넘는 경우도 봅니다. 나라 전체로도 작은 땅덩어리인데 갈라져 있고... 저희 세대를 포함해 선배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이영환 대표 프로필

- 봉현면 두산리 출신

- 봉현서부초등학교, 풍기중학교, 영주고등학교

-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이수

- 신이산업, 대업스포츠 근무

- 주)영민섬유 창업 (창업 당시 회사명은 영민상사)

- 현재 주)영민섬유 대표, 광주하남상공회의소 상임의원

- 역임 하남기업인협의회 회장, 재경 영주고총동문회장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