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얼마 전에 ‘극단 소백무대’의 연극〈누가 요강에 똥 쌌어!!〉를 관람했다. 요즘 농촌 현실의 고령화 문제를 풍자적으로 잘 해석한 작품이었다. 늙어가는 농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챙기는 ‘노노(老老) 간병’의 직설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보였다. ‘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좀 더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로 ‘치매’와 홀로 된 ‘노인의 고독’이라는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사람은 ‘노화’를 비켜 갈 수 없다. 생로병사 중 세 가지는 노화와 관련이 있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고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는 것이다.
흔히 치매는 암보다 무서운 질환이라고 한다. 다른 질병에 비해서 돌봄의 기간이 길면서도 스스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는 주변인을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쉽게 지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단독으로 치매 환자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일 것이다.
지난 4월에 ‘서울 강동구에서 90대 치매 환자인 노모와 60대 두 딸의 사망’이라는 뉴스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약 10년간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던 두 딸은 엄마가 ‘자연사’하자 나란히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간병 부담으로 치매 환자 가족이 함께 비극을 맞는 사례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은 여전히 공고한 관습과 차별로 남아 있는 가부장 습속의 면면을 민감하게 묘파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88만 6천173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등록자가 약 38만 명이라는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위 내용 두 딸의 가족처럼 돌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디에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환자를 단기 보호기관에 잠시 맡기거나 종일 방문요양 서비스 이용권을 주는 ‘장기요양 가족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장기요양 가족휴가제 이용자가 연평균 1000명 미만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돌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제도가 있지만,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라서 환자와 보호자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요양원이든 그 어느 곳에서 하루라도 돌봄 봉사활동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픈 사람을 간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 것이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밥을 먹여주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목욕시켜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다름 아닌 가족이거나 이웃이며 나의 미래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로 혼자 사는 노인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쉽고,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가족과 단절되어 고독사 위험군이 될 확률이 높다. 치매에 걸린 사람도 홀로 사는 노인도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 가족만으로 이들을 보살피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고충이 따르기 마련이다. 돌봄도 이제는 나눔이 필수인 시대가 도래했다. 순수 가족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돼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선진국처럼 노인 돌봄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노인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을 보급하여 주거 안정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나 홀로 가구에 대한 사회 안전망 확충이 절실한 이유다. 자기 치유의 서사가 내면적 독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차원으로 공유될 수 있는 돌봄은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평균수명 백세시대’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건강 수명’을 지향해야 한다. 사는 동안 이유를 불문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정도의 정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노후의 삶의 질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노인 돌봄은 우리 모두의 미래이며, 지금 우리의 삶이 필요로 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란, 사람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