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행인3
-이승진
낙서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리는 일요일
뒷정리 담당 기간제 교원으로 출근을 한다
준비-개회식-축구 경기-시상식-행운권 추첨-뒷정리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장과 일정 거리를 두고 어슬렁어슬렁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신다 내가 맡은 배역은 경기장에는 나타나지 않고 화면의 귀퉁이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
그대 일이라면 일요일에도 출근하던 계약직이 본부석과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훌쩍훌쩍 일회용 눈물을 종이컵에 타서 마신다 붉은 중독이다 고개 숙인 바람이 경기장을 뒷정리하는데 그대 화면의 귀퉁이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행운권에 당첨되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퇴근 무렵에는 그냥 퇴근해도 될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화합과 단합을 위해 마련된 “낙서초등학교 동창회”. 동창회에 참석하는 순간 개인이었던 그대와 나는 무리가 됩니다. 출신이라는 권리를 입고, 책임이라는 운동화 끈도 꽉 묶고서요. 숨 가쁘게 뛰기만 하는 무리와 “어슬렁어슬렁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무리,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나무 그늘에 앉아 괜히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무리도 보입니다. 노을의 긴 목이 늘어질 즈음에 “귀퉁이에 잠시 나타”나거나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일생을 하루 치 동창회로 바꿔 본 시에 속도가 붙어 이채롭습니다. “준비-개회식-축구 경기-시상식-행운권 추첨-뒷정리”로 간단 정리 된 평생이 작은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 여섯 번만 건너면 되는 것처럼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것 또한 한평생이란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지요.
세상이라는 화면의 중심부거나 귀퉁이로 접혀 있거나, 우리는 행인입니다. 살았거나 살아가거나 행인1, 행인2, 행인3… 그리고 행인 몇 번째입니다. 동시에 주인공 0순위이기도 합니다.
내가 행인이라서, 그대가 행인이라서 꽃 피고 해 지는 세상을 날마다 삐걱대며 감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