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붉은 열매

                                               -조경선

 

어두운 툇마루에 앉아 아버지가 담배를 피운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불빛만 보이다 사라진다

한 마리 반딧불처럼 움직인다

고요가 점점 타들어가는 붉은 열매다

당신이 고집한 외길이 터에 깃든다

버드나무 속에 깜빡이는 반딧불이

마당으로 올라온다

가장 가까운 별자리를 개척하고

적막한 담장엔 늘 귀가 자란다

달빛에 당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어둠 속에서 붉은 열매를 찾을 때

불빛은 날아가다 돌아오는 마법을 부린다

누굴 저렇게 기다려본 적 있는지

아득한 땅에서 당신은

또 한 편의 노래를 뿜어낸다

 

-아버지라는 더께

고삐 풀린 슬픔과 마주쳐, 목구멍 아래까지 차 있던 울음이 터질 때는 언제일까요? 겹쳐진 시간과 접힌 공간 사이로 연결된 기억의 보따리를 풀 때면, 아버지는 더 자주 다녀가는 것 같아요. 오래 녹슬어 있는 내(화자) 안의 별스러움도 가정의 달인 5월이 되면 감당을 못하니까요.

아버지가 어둠을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웁니다. 내뿜는 담배 연기 따라 등도 얇게 말라갑니다. “아득한 땅에서”, “또 한 편의 노래를 뿜어”내는 아버지가 “고집한 외길이 터에 깃”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마리 반딧불처럼”, “날아가다 돌아오는” 담뱃불이 “마당으로 올라올” 때면 비로소 나는 편해지며 따뜻해집니다. 모든 게 환상이고 착각이지만요.

그물을 빠져나가듯, 먼 길 뜨신 아버지는 오늘도 깜빡이며 살아있는 붉은 마법이 분명합니다. 그 그리움의 걸음마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를 가슴에 들여 뒤척이는 달빛만 더 시큰한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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