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있어선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본인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으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신념과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라면 결속력은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소속감과 친밀감 형성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아 그들만의 특정 문화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바로 팬덤의 힘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팬덤 문화가 확산하는 추세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물론 다양한 분야까지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 팬덤(Fandom)은 광신자 fanatic의 fan과 집단 dom을 합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현대 사회를 개인의 시대라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팬덤의 활약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팬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연예인의 팬덤은 문화 소비 지형을 변화시키고, 정치권의 팬덤은 정치적 자산으로까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이것은 건전한 팬덤 문화가 형성되었을 때의 일이다.
팬덤의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게 오빠 부대라 칭하던 십 대들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연령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그의 노래를 몇 날, 몇 시에 스트리밍해 조회 수를 올려 초대형 전광판에 광고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팬덤의 형성은 연예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상품, 브랜드에 커뮤니티를 입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팬덤을 통한 시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팬덤 문화도 지나치면 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사생팬이 위험한 이유는 열성팬으로 집착하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안티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누군가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볼 때 그를 적대시하거나 멸시해서도 안 된다.
개인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그마저도 수용이 어렵다면 팬으로서의 자질을 생각해 봐야 한다. 꼬여진 팬심이 간혹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에 자신이 절제할 만큼의 열정이면 충분하리라 본다.
지난가을, 우리 지역 축제장에서 특정 가수의 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같은 옷을 입고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채 축제장을 누비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공연이 시작되려면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함에도 그들의 표정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수를 향한 팬심 하나면 충분했다. 몇몇 팬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전국 각지였다. 그들에게 있어 거리와 시간은 문제가 아니었다. 절대적 팬심 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의 행복지수를 높였던 것일까.
바로 소속에 대한 만족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상대도 같이 좋아하고 있으니, 감정적으로 그들은 이미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기 위해 그 가수의 공연 스케줄 따라 전국 곳곳을 누비는 팬들을 보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 양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팀워크가 좋을 때 만족도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즐기는 기쁨 또한 크기에 더욱 똘똘 뭉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스타와 팬의 관계를 연구한 앤드류 튜더는 둘의 관계엔 4가지 요소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첫째는 서로 감정적으로 친해지는 것, 둘째는 감정적으로 동일시되면서 나와 같은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셋째는 팬들이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것, 넷째는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팬은 스타의 모습에서 자신의 욕구를 대리 만족할 수 있고, 스타는 팬으로부터 받게 된 사랑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재확인할 수 있다. 결국 둘은 서로가 원하는 욕구를 상대로부터 충족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조직이나 단체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갖길 원한다. 공동체에서 얻는 에너지다. 팬덤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집착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잃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집착에서 비롯됨을 잊어선 안 된다. 건전한 팬덤 문화가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