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4.10 국회의원 선거 열기로 봄날이 뜨겁다. 나는 선거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어지러워 구토를 느낀다. 가난한 이들은 왜 1%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복지예산을 줄이고 국가 장래를 준비하는 RND 예산을 삭감하는 무리에게 표를 몰아주겠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켜줄 인물과 정당에 투표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킬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1% 부자들이나 내는 종부세를 반대하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친척 어른 이야기다. 작은 임대아파트에 사시면서 단지 노인회 일을 열심히 하셔서 회장도 되셨다. 대통령 선거가 한참이던 2007년 겨울, 이 어른이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이명박이 대통령 되어야 해, 안 그러면 나라가 끝장나!” 하셨는데. 그 절박한 시선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진심’을 느끼고 나는 절망했었다. 도대체 이 어른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셨길래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의 정치를 하고 계신 것일까? 그분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나라 걱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어지러웠었다.
지금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피우기 시작했고 대학을 거쳐 군에 들어가 일병이 될 때까지 피웠다. 일병 진급하는 날 절연을 선언하고 끊었는데 제대하고 복학하고 직장에 들어가 1년이 되도록 피우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피우게 된 담배가 하루 세 갑 골초가 되어 십 년이 넘도록 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한순간에 끊었다. 금단증상 같은 건 없었다. 어쩌다 그날의 일을 말해주면 다들 ‘뻥’치지 말라고 하지만 진짜다.
1997년, 나는 솔로몬군도 캠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홀로 앉아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근심에 잠겨 멍하니 있었다. 담배를 왜 끊지 못하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망치로 머리를 치는 것 같은 충격이 왔다. “네 몸이니 네가 결정하면 되는 거야”라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며 머리가 깨질 듯 쑤시고 아팠다. 동시에 내가 한 번도 진심으로 금연할 결심한 적이 없었으며 담배가 왜 끊기 어려운지 핑계만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역겨운 악취가 콧구멍으로 몰려들었다. 댓진내에 찌들고 망가진 몸에서 나는 누린 냄새를 그동안 나만 못 느끼고 살았다니, 이 역겨운 악취를 견디며 나와 함께 일해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얼마나 미안했던지, 보름은 틈만 나면 샤워하고 양치를 하고서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지냈었다. 그일 이후 나는 담배에 무관심하다. 금연자들이 느끼는 끽연 욕구는 전혀 없고 연기가 괴로울 뿐이다.
얼마 전 박구용 교수(전남대 철학과)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둘 이상이 모이면 정치를 한다. 서열을 다투고 관계를 설정하고 그런 과정들을 겪고 목격하며 성장한다. 개인의 정치적 태도는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몸에 배어서 형성된 습관 같은 것이고, 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학자들이 밝혀냈다고 했다.
박구용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담배를 피우게 되고 금연하고 다시 피우다 완전히 끊게 된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의사들이 아무리 외쳐도, 끊어야 한다고 때마다 굳게 결심하고 시작하지만, 금연은 쉽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내 몸의 주인인 것을 깨달은 순간, 몸은 이미 변해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의 정치도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 정치를 대하는 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일까?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나의 삶을 알차게 채우고, 후손들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이끄는 결정일까? 또는 이 한 표로 내 땅과 집의 값이 올라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인가? 내가 주인이라는 자각을 하는 그 순간 그동안 나를 지배했던 습관과 가당치도 않은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 내가 원하는 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바가 투표용지에 제시되었다면 바르게 찍으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나를 화나게 했다면 나의 분노를 알려주어야 한다. 상대 후보에게 기표하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는 것, 용지의 엉뚱한 곳에 표시해 무효표를 만드는 것 등이 모두 성난 주인이 주권을 행사하는 정당한 방법이다.
선거 때만 되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칠푼이 머슴을 엄하게 꾸짖는 것도, 각성한 주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아니겠는가.

